우사단 마을에 오게 된 계기
이 동네에 처음 오게 된 건 2012년 여름이었습니다. 9월 초였어요. 그때 청년장사꾼에서 장사와 문화기획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들을 모집한 적이 있어요. 그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보기위해서 이 동네에 처음 왔죠.
그 전에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었고
2011년에 학교에서 이슬람 사원을 답사하러 한 번 왔었고. 학교에서 복수전공으로 문화기획을 해서 지리와 문화의 결합을 통한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 계기는
‘선과 예술’이라는 학교 수업을 듣다가. 주제는 파격이고 그 주제에 걸맞게 어떤 발표를 해도 좋은 것이었는데 제가 했던 것은 어떤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서 마치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꾸민 거죠.
모큐 드라마처럼.
네, 그때 했던 내용이 일본인 화가의 이야기였어요. 1800년대 후반의 화가가 우끼요에라고 에도 시대의 판화를 그리는 사람이에요. 그림을 잘 그려서 유럽에 가게 된 거예요. 만국박람회 일본관에 참여해서 그림을 팔기도 하고 유명해졌는데 그 당시 서양의 인상파 화가들과 친교를 맺어서 함께 여행을 다니며 놀기도 하고. 그런 작가가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우끼요에 풍의 그림이 유럽에서 유행을 했었어요.
고흐 그림도 그랬고.
그런 이야기를 꾸미고 마지막에 ‘구라’라고 말하는 게 그 수업이었거든요. 그 교수님도 속여야 되니까 디테일하게 했었어요. 발표를 할 때도 할 때였지만 준비하면서 이야기를 만들 때 집중을 할 수 있었거든요. 재미있었고. 내가 알고 있던 지리적 지식과 역사적 지식, 이야기를 결합시켜서 뭔가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생각을 2학년 때 하고 3학년에 넘어 와서 비슷한 전공 중에 문화기획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그렇게 관심을 같게 되었어요. 마침 마을 공동체 사업도 시작을 했어요. 마을에서 콘텐츠를 만든다면 내가 지리 공부를 하니까 뭘 해도 할 일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2012년 중반에 청년장사꾼 문화기획 스터디를 알게 돼서 오게 된 거죠. 와보니까 연석이형이랑 단이가 면접관으로 있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연석이형이 저에게 문화기획스터디를 소개시켜준 교수님하고 아시는 사이더라고요. 교수님의 선배가 감자골 스튜디오 대표님이셨고.
처음 마을에 와서 한 건 뭐였어?
처음에는 청년장사꾼 문화기획 스터디만 열심히 했어요. 마을 회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갈 생각은 없었어요. 매 주 단이가 화요일마다 회의가 있으니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오라고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그렇게 이야기를 듣던 게 네다섯 달. 청년장사꾼 문화기획 스터디만 생각했어요. 마을 회의를 참석하면 두 번 와야 하니까. 10월에 할로윈 파티를 왔는데 너무 재미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놀았어요. 단이가 항상 예술가, 아티스트라고 소개를 해줬거든요.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한 번 갔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연석이형 단이도 원래 재미있지만 재민이형도 재미있고 생각보다 거리감을 많이 못 느꼈어요. 그러다가 한 달 정도는 놀러만 왔던 것 같아요. 마을 신문을 처음 만들게 되면서 마지막 페이지에 마을 지도가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 지도에 들어가는 정보를 조사했으면 좋겠다고 연석이형이 부탁을 해서 2013년 1월에 자원 조사를 했어요. 그때는 의식 없이 하라고 해서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뭐 (웃음)
왜냐면 제가 지리과이긴 하지만 방법론적인 것이 부족했어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에 훈련이 조금 안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당시 일기를 다시 타이핑해 놓은 것을 보면 별일이 아닌 말에 크게 반응했더라고요. 예를 들면 마하르바바트에 갔는데 사장님이 “물건을 사러 왔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잖아요. 그 뉘앙스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더라도 그럴 수 있는데 그걸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서 빨리 그 상점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