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단

연석이형도 청년장사꾼이지만 문화기획자로서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오단씨에게는 청년장사꾼의 입장을 듣기 편하지 않을까.

청년장사꾼을 하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학생이었고요. 학생인 와중에 청년장사꾼을 같이 했고. 4학년이었는데 윤규 대표를 먼저 알았어요. 대학생 프로그램을 하면서 알게되었고 처음에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도와주고 있었죠. 청년장사꾼은 2012년 1월에 시작했는데 저는 5월부터 합류해서 학교생활과 병행하다가 졸업하고 지금까지 계속 일을 하고 있어요.

왜 청년장사꾼이라는 단체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막연히 이것저것 많이 해보았는데 그런 것들 중에는 축제나 공연, 전시 같은 좁은 의미에서 예술에 가까운 문화기획에 관심이 있었고 그런 축제 자원봉사 같은 것들을 찾아다녔는데 그건 직접해볼 수는 없잖아요. 그냥 해야되는 일이나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니까요. 내가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청년장사꾼이라는 단체는 막 시작한 때, 매장도 내기 전이었어요. 그런데 앞으로 매장도 내고 문화적으로도 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윤규대표에게 계속 들었어요.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었고 오픈하기 전에는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했었는데 예를 들면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게임을 만든다거나 하는 걸 같이 했는데 재미있었고 여기는 작은 곳이지만 내가 같이 키워가면서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바로 만들어보고 그걸 통한피드백도 바로 얻을 수 있겠구나. 다른 회사는 들어가면 일단 해야되는 일들이 많을 텐데 여기는 내가 더 할수 있는 범위가 많아서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들어왔던 것 같아요.

청년 장사꾼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어요?

초창기 멤버는 저와 다섯 명이 더 있었어요. 대표랑 연석오빠, 그리고 장사를 해보고 싶던 사람이나 이런 활동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죠. 5월 즈음에는 그들과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여름에 매장 오픈 준비했어요. 그런데 1호점 준비를 하기 바로 전에 자기는 다른 길을가고 싶다고 나간 오빠가 한 명 있었고, 저까지 포함해서 다섯 명이 여름내내 1호점을 준비했죠.

연석이형에게도 했던 질문인데 왜 커피였어요? 이야기를 듣기로는 커피, 치킨, 삼겹살은 하지말자고 했었다던데

커피를 하지말자고 했던 이유는 초기 투자 대비 수익이 별로 안 나는 구조여서예요. 테이크아웃으로 날개 돋친 듯이 팔면 많이 뽑을 수 있겠지만 일단 카페는 오픈하는데 머신도 사거나 빌리거나 해야하고 냉장고 및 시설을 모두 내 돈으로 해야하는데 비교하자면 맥주 같은경우는 기계나 냉장고도 주류회사에서 주거든요. 그리고 커피는 한 잔 정도 마시지 계속 마시지 않잖아요. 커피는 그런 면에서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죠. 지금은 매장이 여러 콘셉트의 매장이 생겼지만 그때는 열정감자 초기 콘셉트의 매장을 내려고 했거든요. 뭔가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의.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카페와는 조금 안 맞지 않을까 해서 카페는 하지 말자고 했었는데 저희는 지금도 그렇고 먼저 자리를 보고 아이템을 정하거든요. 왜냐하면 돈이 많이 없으니까 월세가 저렴한 곳을 찾고 그 주변에 뭐가 좋을지, 뭐가 없는지, 어떤 사람들이있는지를 보죠. 그때 연석이 오빠가 워크스를 먼저 알아서 놀러왔는데 월세가 저렴하고 사원 앞에 자리가 있었던 거죠. 생각해보면 거기는 월세도 저렴한데 이태원역과도 그리 멀지 않으니까 우리가 사람들을 끌어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이미 아티스트들도 많이 있었고들어오고 있는 추세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희가 장사만 하려던 것이 아니라 장사를 통해서 지역을 활성화 시키고 문화기획파트도 염두하고 있어서 콘텐츠를 같이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해 자리부터 계약을 했었고 거기에서 뭘 할까 생각했는데 커뮤니티 공간을 먼저 만들고 싶었어요.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하겠는데 거기서 술을 팔자니 사원 바로 앞인데 이슬람권은 술을 안 먹으니까 너무 처음부터 적대시하는 느낌이 들까봐 조심스러웠죠. 그리고 카페에서 오래 일을 해서 커피를 할 줄 아는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바리스타 했던 친구가 맛을 잡으면 될 것 같았고 사원 바로 앞이면서 공간이 작으니까 테이크 아웃으로 관광객들에게 많이 팔고 동네 사람들도 사먹게 하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카페를 했던 것 같아요.

마을 모임은 언제부터 시작한 거예요? 청년장사꾼 입장에서 왜 시작했는지도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청년장사꾼은 장사를 하면서 지역을 활성화시킨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카페 오픈준비를 하면서 동네에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는지 몰랐는데 윤규 대표님 옛날 동창의 룸메가 우사단에  작업실이 있었어요. 그분의 룸메가 스타일지음의 수정언니였어요.그리고 스타일지음과 노동연구소를 소개해준거죠. 처음 가서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지기 시작했고 동네에서 우리 혼자 할 수는 없으니까 사람들과 재미있는 걸 해보자는 식으로 모임부터 만들어보자. 처음에는 친해지는 것이 목표였어요. 왜냐하면 그냥 일적으로 만난 것도아닌데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은 재미가 있어야 오게 되고 하나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였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인데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마을회의에 오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잖아요.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마을회의에 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들끼리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나오는 사람들은 옛날에 나오던 사람들이 일단 많아요. 거의 초기에 자주 오면서 친해졌던 사람들. 왜냐하면 저희가 오기 전에 있던 건 노동연구소, 스타일지음 정도였잖아요. 영동오빠도 저희를 통해서 들어온 사람이었고 효언니도 그렇고요. 박진수 감독님도 조금 있다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초기에 재미있게 놀았던 사람들이 지금도 주축으로 하고 있는 것 같고요.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지금은 게다가 한 달에 한 번을 바뀌었잖아요. 맨 처음에는 동네에 뭐가 생기면 다 알잖아요. 그러면 재민이오빠나 영동오빠가어떤 걸 여느냐고 물어보고 마을모임이 있으니까 나오라고 이야기 하곤 했죠. 오다가 재미를 붙여서 계속 오시는 분들도 있고 오다 안 오다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건 자기… 우리는 뭔가 동네 친구들끼리 수다 떠는 느낌이어서 처음에 재미를 느꼈던 사람들은 계속 나올 수있지만 나중에 온 사람들은 이미 너무 얘네들끼리 친해져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저희는 처음에 사람이 오면 인사를 해요. 뭐하는 사람인지 이야기를 하고 원래 있던 사람들. 주축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니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모임에 와도소외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에는 다 그랬거든요. 그 소외감이 들더라도 재미가 있다거나 좀 더 친해지고 싶다거나 했던 사람들이 계속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한 번 왔다가 조금 거리감이나 벽을 느낀 사람들은 계속 못 오게 되는 것 같아요.

외부에서 나오는 비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자기들끼리 논다.”, “자기들끼리 한다.” 잖아요. 모임 속에서 생각을 해보면 서로 마음을 열어야하는 부분도 있는 건데.

오단씨 같은 경우는 계단장에 대한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맡아서 하잖아요. 작년이나 재작년 같은 경우는 지원사업 회계처리도 다 도맡아 했고 그런 걸 겉으로 보았을 때는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겉으로 보았을 때는 자기들끼리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오면 멤버들이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하고 있는데 외부에서는 잘 모르니까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영동이 같은 경우에는 우스갯소리로 이야기 했지만 “나는 이 마을이 아니어도 된다.” (웃음) 그런데 “하고 싶었던 일과 할 수 있었던 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마을이 우사단이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오단씨 입장에서 우사단 마을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더 이야기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말씀하신데로 행정적인 일을 거의 다 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계단장만 예를 들어보면 그 행사가 뚝딱 열릴 수 있는 행사가 아니잖아요. 사람들 모집도 해야하고, 모집을 하려면 공지를 올려야 하고, 모집하면 신청자를 받아서 선정하고 선정된 사람들에게 공지하고. 또 저희는 떨어진 사람들에게도 떨어졌다고 공지를 하거든요. 문의도 다 받고. 문의 받는 것도 처음에는 굉장히 일이 많았어요. 특히 조금씩 알려지면서 외부 인터뷰가 많이 들어왔는데 그런 것들도 다 진행을 했었고. 그게 계단장만이라면, 저희가 지원사업을 받은 것이 있었는데사업을 받으면 받았던 돈을 신문도 만들고 장터 때 드는 돈들, 현수막이나 지도, 2014년에 했던 라바콘에 화분을 심는 것도 돈이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잖아요. 다 서울시 돈을 받아서 했던 것이고, 도깨비 시장 아주머니들 앞치마 해드리고 봉투도 만들었죠. 뺏지, 카드도 만들었는데 그런 것을 만드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걸 서울시에서 많이 지원 받았는데 그 지원을 과정이 생각보다 어려워요. 그것도 우리가 이런 것을 하겠다고 계획서를 써서 제출하고 통과되면 면접도 한 번 보고, 동네에 실사를 나오죠. 그러면 설명도 해드리고. 그렇게 선정이 되면 회계교육부터 받으러 가고. 정산이라는 것이 정말… 힘들었죠.

이걸 해본 사람은 짜증나는 걸 알지만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그냥 하면 되지.” 잖아요. 속 이야기를 더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진짜 손이 많이 가요. 마지막으로 받았던 지원사업이 예산이 커서 손도 가장 많이 갔었는데 마지막 것만 거의 여섯달 정도. 그러면 서울시에서 두 번으로 나누어서 보고를 받거든요. 세 달, 세 달 하는데 중간보고를 해야할 때가 생기기도 해요. 갑자기 이번 주까지 해달라고 하면 그것만 매달려야 되는 거죠. 영수증을 다 모아야 되고 영수증마다 우리가 무엇을 했다는 걸 증명해야 그쪽에서도 돈을 이렇게 사업에 지출을 했다고 보고 할 수 있어서 이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가끔씩은 너무 많다, 어렵다는 것을 느낀 점도 있었죠. 예를들어 신문을 만들면 인쇄소에서 결제한 것을 증빙하고 우리가 만들었던 신문도 증빙을 하고 신문을 만들기 위한 회의에 대한 회의록도 다 작성하고 누가 왔는지 명부, 사진도 항상찍어야 되고. 그래서 모일 때마다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첨부하고 모였던 사람들 이름 첨부하고연락처까지 넣을 때도 있었어요. 그 사람이 동네에서 뭐하는 사람인지도 소개해야 되고. 신문에 어떤 내용이 들어갔는지 간략하게 정리해서 보내는 것이 신문 한 번 나오는 거. 그런데 그 신문이 보통 사업 중에 네 번은 나와야 하고 그러면 똑같은 거 네 번, 지도 두 번, 라바콘한 번, 앞치마… 모든 것들이 한 번 할 때마다 지금까지 말한 과정이 한 번씩은 들어가야 되는 거죠. 그리고 중간보고하면서 느낀 점, 개선할 점, 어려웠던 점을 또 쓰고 마지막에 보고서 내면서 원본 첨부해야하는 것들 첨부하고 직접 가서 내거나 우편으로 내거나. 그런데 서류들이 한 번에 매끄럽게 되는 경우가 잘 없죠. 가끔씩 내가 빠뜨릴 때도 있고, 그쪽에서 뭐가 빠졌다고 해서 왔다갔다 할 때도 있고. 증명이 약간 부족하다고 할 때도 있어요. 결제도 말이 결제가 쉬운 거지 그냥 우리가 인터넷으로 사는 것들을 인터넷으로 사기 힘들 때도 있고 금액에 제한이 있을 때도 있어요. 그래서 인쇄소 같은 경우는 저희쪽에서는 계좌이체를 하는 것이 편한데 계좌이체를 하려면 그걸 위한 제출서류가 또 필요해서 그걸 할 바에는 내가 카드를 들고 충무로 인쇄소에 가서 직접 결제를 하고 오는 경우도 있죠. 그걸 또 한꺼번에 하면문제가 생기고 견적서나 비교견적서를 요구하니까. 그럴 바에는 여러 번 간다. (웃음) 그래서 여러 번 갈 때도 있고. 그걸 받을 수 있는 좋은 업체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견적서 요청을 드려서 조금 더 편하게 진행되기도 하지만요. 한 달에 한 번씩은 정리를 해야하고 세 달 묶어서 한 번, 여섯 달 묶어서 한 번. 그렇게 반 년을 했고. 그 전에는 사업비가 많지 않아서 몇 번 하면 되는 정도였어요. 그나마 다행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