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광화문 커피_이병학 선생님 인터뷰

예전에 인사동, 홍대, 의정부를 거쳐 강릉에서 커피숍을 여셨다고요.

87년에 처음 인사동 민정당 사무실 옆에서 ‘산내방’을 했죠. 커피하고 녹차 두 가지를 했고요. 그 다음에는 의정부 쪽에서 ‘늪지대 사람들’을 했고요. 그거하고 강릉 ‘언덕 위의 바다’.  ‘히피커피’를 했죠. 그리고 지금 ‘광화문 커피’.

지역마다 특색이 다 달랐을 것 같은데요. 그 지역에 맞춰서 하신 건가요?

예, 다 특색이 있게. ‘늪지대 사람들‘을 했던 의정부는 문화공간의 불모지였는데 거기서 ‘휴서사’라는 극단을 만들었어요. ‘휴전선과 서울 사이’라고, 그때 극단 단원들 중에는 지금의 권용운처럼 배우가 된 애들도 있고요. 저는 비영리목적으로 하면서 커피숍에서 나오는 걸 갖고 먹고 살았지만 (웃음) 같이 하고 그랬었죠.

강원도에서 박이추 선생님과 커피축제도 하셨죠?

커피 때문에 만났고 그분하고는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요. 커피는 그분도 잘 하고 있지만 저하고 커피 노선이 다르고요. 저는 매스컴을 많이 안 탄 사람이에요. 지금까지도 매스컴을 안타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있고. 왜냐면 문화 쪽으로 있고. 커피라는 것이 (커피숍을 하는 사람들은 꼭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이 뭐냐면) **‘커피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카데미 막 나와서 일주일에 한두 번 배워서 할 문제가 아니라 커피숍은 진짜 그 지역의 문화 공간. 커피라는 것이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주인의 마인드가 있다면 다른 사람과는 무언가 달라야 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특별나게 유명한 사람이라든지 배우가 아니라 자기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거죠. 따뜻한 사람이어야 되고요.

강원도에서 서울로 돌아와 ‘초심’으로 광화문 커피를 오픈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초심이라는 것이 어떤 말씀이신지

늘 저는 변두리에요. 인터넷에 ‘언덕 위의 바다’만 검색해보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오잖아요. ‘언덕 위의 바다’에서는 테이블 네 개에서 20년 동안 집이 막 뜯어고쳐져요. 처음에는 낡은 집이었다가 확 뜯어지고 간판도 다르고 변화무쌍하게 수없이 변해요. 20년 동안 마음에 안 들면 또 칠하고 또 칠하고 그러는 것처럼 늘 자기 스스로의 변화와 자기 속의 즐거움이 있는데, 초심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자기의 과거를 못 잊고 지금 현재에 대해서 불만스럽고 또 거만해지고 내가 뭐 된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것. 초심은 옛날에 처음 가졌던 마음이라는 거잖아요. (저는) 늘 변두리. 전혀 사람들이 예측 못하는 쑥 들어가 있는 곳. 광화문 이 동네에서 처음 커피숍 할 때도 사람들은 미쳤다고 그랬어요. 이 동네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여기는 커피 망하는 곳인데 저기 큰 길로 가지 왜 여냐‘고. 바닷가에 쑥 들어가 있을 때도 그랬죠. 지금은 거기가 4차선인데 옛날 7번 국도는 꼬불꼬불한 2차선이었죠. (그래도) 그때 거기서 커피를 했을 때, 테이블 네 개로 하루에 백만 원씩 팔았어요. 줄을 설 정도로 드립 커피에 목말라 있던 곳이라.

백만 원이나요?

하루에 백만 원씩.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주말에는 백만 원, 평일에는 육십만 원 정도. 그때 커피 값이 삼천 원이었어요.

그 당시 삼천 원인데

20년 전에 삼천 원이면 굉장히 비쌌는데도 어마어마하게 왔죠. 그 동네, 강원도에서는 ‘언덕 위의 바다’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처음으로 핸드드립이 나왔죠. 제가 커피 축제를 강원도에서 같이 주관할 때 (그네들은 저를 ‘커피의 창시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웃긴 코미디로 보이고) 커피를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이다 보니까 내가 밀접한 관계잖아요. 커피는 배부르게 먹는 것이 아니라 카페인적이에요. 카페인이 있기 때문에 즐거움이거든요. 그래서 이걸 잘 배우고 잘 해서 손님들한테 커피를 줘야 되는데 다들 기계화 되잖아요. 요새는 다 빨리빨리 체인화 되고 대량화 되는데 저는 지금까지 “이건 아니다!” 부르짖는 거죠. 유럽에 가면, 영국이나 독일이나 가면 (제가 독일에서 커피를 배웠는데) 걔네들이 늘 꿋꿋이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저는 감동 되었고요. 왜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하는 걸까...... 제가 가게이름을 하나로 하지 않고 계속 변화하느냐면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계속 상업적으로 변하잖아요. 대부분 사람들은 이름을 가지고 다니는데 그렇게 돌아다니면 놓지를 못하잖아요.

하나의 상품이 되니까.

예, 저는 그게 싫은 거죠. 그것도 제 속에 빠져버릴 수 있는 거니까. 사람들은 왜 그걸 안하냐고 하는데 ‘언덕 위의 바다’는 ‘언덕 위의 바다’로 끝나는 거고 ‘히피커피’했을 때 히피처럼 머리 길렀던 것은 그 모습으로서 끝나고. ‘광화문 커피’에서는 또 나의 새로운 모습과 내 안의 다른 걸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죠. 인생은 짧은데. 안 그래요? 사람들이 저를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하면 손님들이 모르고,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걸 아는 사람들은 또 찾아와요. 30년 가까이 내가 어디 가서 숨어있든지 내 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는 이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 주인이 변하지 않잖아요. 옷 하나 벗겨진다고 그래서 그 사람이 어디 변합니까? 그런 거죠. 제 사고가 그런 거. 왜 이런 거 계속 갔으면 좋은데 왜 안 하냐? 저는 다른 사람들 사고와는 조금 다릅니다. 허허허허 (웃음)

이름은 왜 ‘광화문 커피’라고 지으셨어요?

사실은 광화문 앞에다가 커피숍을 하고 싶어서. 광화문 좋잖아요. (외부로 통하는 경복궁의 세 개의 문 가운데서도 어떤 상징적인. 이름도 너무 좋은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또 이성계 쪽 씨고 그쪽 파여서. (광화문도) 이성계가 만들었잖아요. 무학 대사가 만들었지만 사실은 이성계가 도장을 찍어준 거지 ‘하라’고. (웃음) 어쨌거나 문이라는 것은 제가 세종로에, 서울에 다시 오면서 갖는 어떤 새로운 마음이죠. 어떤 분은 “광화문이 안 보이는데 왜 합니까?” 그러는데 “원주식당은 왜 원주에서 안 하고 왜 서울에서 원주식당 합니까?”라고 물어보는 거잖아요. (웃음) 저도 광화문 앞에서 하고 싶어요. 그런데 미국대사관을 쫓아낼 겁니까? 아니면 거기 정부청사를 쫓아낼 겁니까? 스타벅스도 3층까지 크게 있잖아요. 그러면 안 되니까 이름이라도 빌려보자.

제자들은 독립문 커피랑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