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작업 하실 때에 영향을 받은 책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아생트. 이아생트는 여자 주인공의 이름인데 실제로 등장하는 건 후반부이고 거의 존재감이 없어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주인공이 낮선 곳에 가는 내용인데, 실제 사건은 별로 없고 공기의 흐름이나 집, 땅의 기운을 느끼는 것을 묘사해놓았는데, 그 묘사가 괜찮은 책인 것 같아요. 이 책을 보고 너무 괜찮은 텍스트라고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레지던시 하는 곳이 완전 시골이었거든요. 울산 언양. 그래서 이런 것들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갔는데 그런 곳들이 되게 많았어요. 집에 대한 묘사로서 지금까지 제가 최고로 치는 것이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이었거든요. 저는 좋은 것들은 모두 발췌를 하거든요. 논문을 쓸 적에 이 책을 참고하면서 이 사람이 앙리 보스코를 소개했는데 그 당시까지는 우리나라에 번역이 안 되어 있었어요. 앙리 보스코(이아생트 저자) 글을 너무 읽고 싶었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워크룸에서 번역이 된 거죠.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집이나 땅에도 영혼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잘 맞았어요.
혹시 한남동에 사셨어요?
저는 여기 살아본 적은 없고 84년부터 지금까지 쭉 방배동에 살았어요. 낡은 집에 꽤 오랫동안 살았죠.
전에 주셨던 도록을 보니까 한남역 주변이 많더라고요.
한남역은 10년 전에. 한남역 인근이 이런 분위기에 이상한 것들이 떨어져 있어서. 그걸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한남동이었어요. 예전부터 저는 버스나 지하철을 무작위로 타고 이름이 특이한 지명을 가보고 싶어 했어요. 가서 아무것도 없으면 그냥 오는 거고. 난지도가 쓰레기 섬일 때도 ‘난지’라는 말이 신기해서 가본 적이 있었고요. 그런 곳에서 기운을 흡수하고 온다고 해야 하나. 10대 때부터 습관이었어요. 그게 미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작업적으로.
한남동이 첫 번째 계기가 된 이유도 궁금해요.
예전에 운봉역을 지나다보면 시멘트공장이 있었어요. 거길 가려고 지나는 길이었는데 국철에 야외노선이 별로 없잖아요. 야외노선은 대부분 내려 보는 편인데 한남역은 패스를 하지 않고도 한강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더라고요. 우연찮게 가게 되었는데 이상한 구조물이랑 해골바가지 같은 것들을 발견하면서 “이게 뭐지?”라는 생각에 우연찮게 하게 된 거죠.
저는 한남역 주변이 산책길이어서 자주 가는데 잠수교 옆에 사람들이 낚시하는 곳도 그리셨더라고요.
냄새나고 더럽고. 그런데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처음부터 있었어요. 으스스하지만 끌리는 느낌에 갔는데 해골들이 있어서 주워왔거든요. “이게 뭐지?”하고 다음에 또 갔는데 그곳에 꽃다발이 있어서 그것도 주워왔고요. 이걸 방문기로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차례 간 뒤에 작업을 해야지 했는데, 나중에 밝혀진 것이 괜히 으스스한 곳이 아니라 거기에 성황당 같은 나무가 있잖아요. 거기서 무당들이 정기적으로 굿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돼지머리를 바치고 고수레 했던 것이 남아있었던 거죠. 물이 싹 빠지면 갯벌처럼 되는데 거기에 돼지머리가 되게 많이 굴러다녀요. 그게 돼지머리라는 것을 몰랐을 때, 쌀도 뿌려져있고 너무 으스스해서 작업이 끝나고 나서는 안 갔어요. 명성황후 제사 지내는 곳이래요.
한강유역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 몇 곳 있거든요. 그 중에서 부군당이라고 한남동에 두 곳이 있는데 그분들이 거기서 제사 지낸다고 하더라고요.
네. 그 굿소리 녹음하고 가져온 돼지머리를 캐스트해서 석고로 (열여섯 번 갔으니까) 열여섯 개를 만들어서 작은 미니어처 작업을 했죠. 지금과는 다른 (유형의 작업을) 시작했었죠.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처음에는 그림이 아니라 다른 작업을 하셨던 거예요?
처음에 저는 대학교 3학년 내내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어요. 학교 잘 안 가고. 하지만 과제를 할 때는 항상 사진 위에다가 그림을 그렸거든요. 한남역 주변의 사진을 찍어서 그 위에 리터치를 하는. 그때는 저의 의도를 보여주려는 것이었지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