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한 홀로서기. 서른 살, 래퍼 감자의 다각적 소통

세대 간의 교두보이자 다른 것의 차이를 존중하는 래퍼 감자 정규 1집 [무르익다]

최영미 시인의 詩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을 때마다 서른 즈음에 음악을 그만두는 뮤지션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갈등과 고뇌가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지만 척박한 한국의 음악씬을 비추어 볼 때, 쉽게 애잔함이 젖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서른 살 래퍼 감자의 이번 앨범은 최영미 시인의 詩 '서른, 잔치는 끝났다'와 어느정도 그 맥을 같이 하는 듯 보인다. 그간 래퍼 감자는 세 장의 싱글과 한 장의 EP, 혼성힙합듀오 '리미와 감자' 활동을 비롯해 최근의 믹스테잎 [ECOTONE]과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MNET '쇼 미 더 머니' 출연을 통해 이름을 알려왔다.

리미와 감자의 해체 이후 래퍼 감자는 방향성과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싱글로 선 발표된 <부모님 전상서>는 우리 시대 부모님께 보내는 찬가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가장이란 머슴', '자신을 위해 쓰는 건 파스를 사는 만원'이라는 가사를 접할 때, 우리는 부모님의 삶이 떠오르고 '늙어버린 당신이 누구보다 더 예뻐'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게 될 때쯤 재즈보컬 김민정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 말을 대신한다. 또 다른 싱글 <이상한 꿈을 꾸었다>는 실제로 감자 자신이 꾸었던 꿈을 소재로 '슈퍼스타K4'에서 활약하고 있는 누소울(계범주)이 피쳐링한 곡으로 가상의 이별을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다.

앨범 발매 전 공개 된 두 싱글은 래퍼 감자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지만 이번 정규앨범은 낮은 목소리의 사랑노래 <아침까지>를 비롯하여 서른 살의 다각적 소통으로 보이는 <박하사탕>, <가지마>, 감자만의 힙합에 대한 시선이 돋보이는 <쫄지 않아>와 <때야> 등의 트랙을 통해 대중성과 진중함을 확보하고 있다. 그가 쫄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준비해온 정규앨범 [무르익다]는 '리미와 감자', '긱스', '부가킹즈' 등과 작업해온 메인 프로듀서 '빅파이'를 비롯해 'UMC'의 프로듀서 'CEEDO', '개떡', 클럽 슬러거와 마스터플랜을 종횡무진 하던 힙합그룹 Redrum의 '유운(독사)'이 프로듀서로 참여하여 앨범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비스메이져(Vismajor) 크루를 이끄는 딥플로우(Deepflow)의 피쳐링이 돋보이는 <땡겨>는 '소시보다 다듀'가 땡겼던 한국힙합팬과의 교감처럼 느껴지는 곡이며 이어지는 트랙 <약속있어요>는 보컬리스트 '혜'의 노래와 단단해진 감자의 랩이 '어떤 교집합'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곡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래퍼 감자는 에서 '한국 사회 속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쫄지 않아>에서는 '음원사이트는 만화방'과 같은 비유를 통해 음원정책에 대한 문제를 꼬집는다.

개인의 고민과 문제가 사회문제로 확장되는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래퍼 감자와 그의 음악은 발매된 하나의 앨범, 그 구성물의 질적 양상에 의해서만 판가름되는 가치를 뛰어넘어 '하나의 담론'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많은 '가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르익다]의 앨범 트랙 리스트를 살펴보면 빠른 비트의 곡들과 서정적이며 느린 비트들이 교차적으로 펼쳐지며 한쪽으로 치우칠지도 모르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 앨범을 래퍼 감자의 방향성과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있는 앨범이라 호언장담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래퍼 자신의 고민과 청취자들의 고민, 우리 세대와 사회의 고민들을 아울러 표현하고 있는 앨범이라는 점에서 계속 될 감자의 음악 행보에 기대를 갖게 한다.

래퍼 감자는 [무르익다]앨범을 통해 오늘날 한국힙합씬에 뿌리박힌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기고 있으며 그간의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10년간 제대로 된 씬을 이루지 못한 한국힙합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는' 잔치가 또 한 번 시작된다면 이 앨범과 래퍼 감자는 그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앨범발매 전 공연에서 본 관객호응도는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래퍼 '감자'에 대한 비판들이 괜한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그가 얼마나 여러 세대에 다각적 소통을 이루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서른 번의 겨울이 만들어낸 래퍼의 앨범은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다. 서른 살, 아직 래퍼 감자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기에 최영미 시인의 마지막 시 구절은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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