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서부터 '민중음악을 어떻게 정의해야하느냐'등의 연구를 읽는 것은 항상 흥미로움으로 남지만, 오늘은 신념을 가지고 날을 세우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따지는 그 피곤함에서 잠시 벗어나 본다.
한 발자국 떨어져 그윽하게 바라보면 사실 민중음악이라는 단어 자체가 음악 장르적으로 구분하기에 불완전한 단어임은 확실하다. 대중음악의 대척점에 존재하면서도, 꼭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는, 그래서 음악적 장르라기보다 문화적 장르임에 틀림없는. 그리고 ‘또 다른 민중’들은 접하기 어려운 것이 민중음악 또는 민중가요다.
이 음악은 진보운동과 함께 해왔기에 엘리트에 의해 의식적으로 전파되었고 정의되었다. 그러나 대중도 민중도 결국 대화와 이해, 편의를 위한 구분일 뿐 불완전하다. 칼로 자르듯 명확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그 구분이 무용하지는 않지만 또 용하지도 않다는 것이 불완전함에 완전함을 더 해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나를 돌이켜보면 참 피곤하다. 자, 노곤한 몸을 녹이기 위해 노래를 들어보자.
꽃다지의 '전화카드 한 장'은 민중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은 노래다. 최근 모 방송에서 고래를 좋아하는 한 개그맨이 부르기 이전에도, 누군가에게는 얼핏 스쳐 지나며 좋은 노래라는 기억으로 남아 불렸던 ‘전화카드 한 장’. 사실 이 노래는 몇몇 민중가요가 그렇듯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에서부터 민중과 대중이라는 단어적 말장난의 벽을 허물어뜨렸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전화카드 한 장'의 탄생배경은 이러하다.
꽃다지의 조민하씨는 대선 이후였던 그 당시, 꽃다지의 해체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며 집으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만난 대학동창이
"너, 얼굴이 그게 뭐야. 도대체 얼마나 힘이 드는 거야, 너, 안 되겠다."
라는 말과 함께 지갑에서 전화카드 한 장을 꺼내어 손에 쥐어주며
"힘들면 정말이지 아무 때나, 절대로 망설이지 말고 나한테 전화해라"
라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헤어진 조민하씨는 바로 지하철을 바꿔 타고 사무실로 돌아와 홀로 술을 마시고 천장을 보며 누워 눈물을 흘렸더랬다. 기타를 잡고 마음에서 나오는 멜로디를 놓치지 않고 흥얼거리며.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나는 무엇이 민중이고 대중인지에 대하여, 민중음악의 역할과 그 연구의 무용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삶을 함께 살아감에 있어 자신의 감정이 흥하는 것에 눈길을 준다는 것’에 눈길이 간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나는 오히려 운동과 비운동의 접점에 맞닿은 저 빛나는 삶의 환희에 박수를 보낸다. 그곳에 민중과 대중이 존재하고 빛이 나는 것이라 믿는다. 서로 고달픈 수사에 열변과 피를 토할 필요 없이 서로 맞잡는 손, 그 손바닥에서 함께 흘리는 땀이 우리를 흡착시켜 더욱 밀접하게 만드는 것만 같은 것이다.
시대가 흐르고 전화카드는 자취를 감추었다. 시간이 정지된 군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유물이 되었고 이젠 노래가사처럼 내게 전화를 하라며 전화카드를 꼬-옥 손에 쥐어줄 수도 없다. 그러나 힘들고 지친 친구에게 통신사 데이터를 보내주는 새로운 방법도 생겼으니 형식의 차이는 생겼지만 내용의 차이는 다름없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친구에게 전해줄 것이 단지 전화카드 한 장만은 아닌 까닭에. 오늘 난 이런 편지를 쓴다. ‘줄 것이 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