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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T자 골목>, 패션숍들이 늘어나는 한남동 골목, Ⓒ조선영

한남동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장소는 바로 리움 박물관 맞은편 동네 골목인 이태원로 42길이다. 그 일대는 일명 T자 골목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T자로 볼 수 있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젠가 이 동네에 상권이 급격하게 들어설 무렵 매스컴에서 붙여준 이름일 뿐이다.

지금은 마치 ‘신사동 가로수길’처럼 ‘한남동 T자 골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40년 전만 해도 둑방에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서민들이 살던 동네였다. 지금 이 골목에는 오랫동안 이 곳에서 살아 온 주민들과 최근 2-3년 사이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 우선 이 곳을 오래 지켜온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이 곳을 중심으로 한 한남동의 전반적인 모습을 살펴보았다.

충남 합덕에서 올라온 한남동 ‘토박이’, 합덕슈퍼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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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덕슈퍼 사장님 내외(김효태, 장묘순, 1945년생, 1947년생)는 42년 전부터 한남동에 살았다. 다섯 번을 옮겨가며 살다가 지금의 합덕슈퍼 건물을 산 이후로 이태원로 42길 골목을 지키고 있다. 원래 고향은 충남 합덕. 오래된 가게 이름이 촌스러운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젠 동네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혀 간판을 떼지 못하고 있다. 69년 군대 제대 이후 서울에 올라와 70년도 봄쯤에 답십리 둑방에서 오리도 키우고 호박을 기르던 합덕슈퍼 사장님은 1년 후 한남동에 정착했다.

맨 처음 한남동에 오셨을 때는 동네가 어땠어요?

아! 한남동 왔을 때. 처음에 오니까, 우리 여기 부대찌개(한남 부대찌개)에서 살았어. 거기서 가게를 했었어. 그때는 아채, 과일 뭐 다 팔았지. 그때는 인제 가게가 여기는 우리 밖에 없었구나. 저 밑으로 하나 있었고. 그리고 여기 ‘반가칼국수’ 있지? 여기 ‘플리플리’에서부터 저까지 쫙 어덕¹이었어 어덕.

¹ 어덕 : ‘언덕’의 방언(경남, 전라, 충남).

건물도 없고요?

응, 쬐끄만 집들은 안에 조금 조금 있었어. 그냥 개인이 자기 땅 아닌데다 지은 거. 그런 언덕지였는데 우리가 평탄하게 해놓고 ‘선인장’있는데다가 파라솔을 세 개 쳐놓고 장사를 했지. 그러다가 인제 주인이 바뀌는 바람에 가게를 내달라 그래가지고 저쪽으로 갔다가 안 되겠어서 이 걸(건물) 샀지. 그때는 여기가 완전히 어덕이야 어덕. 그런데다가 지은 거야. 그때는 땅값이 쌌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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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패션숍 들어오지만 동네 상권은 ‘그대로’

그런데 이 동네가 갑자기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뒷골목이라 사람이 없던 이곳에 유명한 옷가게들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동네 상권이 활성화 되지 않는 이유는 주문을 통해 판매되는 디자이너들의 패션숍이기 때문이다. 동네 주민들은 맛집이 들어오길 바라지만 여기 이태원로 42길, 대사관로 5길(T자골목)은 모두 음식점 허가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음식점이 들어올 수 없다. 기본적으로 주택가이기 때문에 옷가게까지는 들어올 수 있는데 음식관련 상권이 들어올 수 없다. 그리고 아직은 쉽게 그 일반주택들을 밀고 들어가기는 힘들다.

또한 살림을 하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 부근에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합덕슈퍼 사장님이 동네에 정착할 무렵에 같이 와서 살던 사람은 세 집 정도. 이 골목에만 서너 집 되던 슈퍼도 이젠 합덕슈퍼 뿐이다. 대형마트와 전화배달 때문에 장사가 안 되던 집들은 모두 이사를 갔다. 슈퍼 사장님이 바로 슈퍼 건물주인인 덕에 세가 나가지 않고, 그래서 합덕슈퍼 사장님 내외는 이곳에서 계속 슈퍼를 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만큼 바쁜 삶을 산 것도 사실이다.

6년 전에 나온 안전진단에서 옛날에 지은 집 치고 튼튼하게 잘 지었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합덕슈퍼 건물은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 만든 벽돌집이다. 벽돌 빛이 바랜 만큼 세월도 쌓였지만 삼남매를 여실히 키워낸 사장님 내외분의 인생도 합덕슈퍼 건물처럼 튼튼하게 쌓인 같다.

인터뷰 - 김경현, 성지은, 조선영, 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