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나름의 선정기준을 정했다. 정책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정책이 없더라도 계속 할 수 있는, [롤링다이스]는 협동조합 정책이 생기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모인 전자책협동조합이다. 이하는 제현주 이사장과 이한나 조합원과의 인터뷰이다.
2009년에 철학모임으로 시작하셨다고 들었다.
제현주 이사장(이하 제) - 사회적경제센터와 서울시청에서 공동주최했던 협동조합 콘서트의 지식미디어협동조합편에 나갔었다. 다른 지식미디어 협동조합과 함께 돌아가면서 발표를 할 때도 ‘어떻게 생겼나?’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아마 협동조합 롤링다이스가 다른 협동조합과 다른 면이 있다면 ‘사람이 먼저 있었다.’는 것 같다. ‘문제의식이라든가, 무엇을 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하려고 하는 ’일이 있고 사람을 모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있었고, 이 사람과 무엇을 할까 해서 한 것이 [롤링다이스]다.
처음에는 철학세미나, 철학책을 같이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2009년 가을 즈음에 시작을 했고, 1년 반에서 2년 정도 그렇게 공부를 했다. 주제를 철학에서 다른 주제로 확장하면서 사람들을 조금 더 모았고 그래서 갖추어진 인원이 지금의 인원이다. 공부를 2년 반 정도 하다보니까 마음이 잘 맞아졌는데 철학공부, 정치, 경제 공부를 하니까 그게 사실은 세계관이랄까 가치관을 많이 담지 않나. 서로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코드가 형성이 된 것 같다.
마음이 잘 맞아서 제안했던 것은 ‘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같이, 일 같은 것을 해보자.’였다. ’일 같은 것‘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은 다들 일을 하고, 회사를 다 다니고 있고. 물론 그때 당시에는 백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다 자기의 생업이 있었다. 공통적으로 세미나를 하면서 안 것은 직장에서 해소되지 않는 즐거운 일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 ’모여서 해소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자.‘ 제안했다. 구성원들도 일단 책과 관련된 일들을 하는 분들이 많았고.
예를 들면 어떤 일들이었나?
제 - 출판사 직원, 마케터, 편집자, 전직 출판사 직원. 나는 그때 당시에 번역가이면서 출판 기획자 일을 하고 있었다. 3분의 2정도가 그러했고 IT관련 종사자들과 대학생도 한 명 있었다. 그 조합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전자책 출판이었다. 전자책 출판을 하면 자본의 부담 없이 조금 실험적인 정신을 유지하면서 일을 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롤링다이스]를 차리게 되었다. 그때는 기본법 시행되기 전이었는데 당시 같이 책을 읽으면서 협동조합 관련된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협동조합이 아니더라도 협동조합의 정신에 입각해서 우리가 이걸 공동사업을 만들어보자면서 시작했다. 지금은 기본법 시행되고 난 다음에 정식 협동조합으로 설립을 한 거다.
협동조합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고 했는데 어떤 책들을 읽었나?
제 - 당시에 읽었던 책은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를 읽었다. 관련되어서 협동조합은 아니지만, 직원들이 소유한 직원소유제의 기업에 대한 책 <가슴 뛰는 회사>도 같이 읽었고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프로포트킨의 <만물은 서로 돕는다>. 그쪽에 관련된 계보의 책들을 여럿 읽으면서 소유와 노동이 일치하는 것이 더 중점이었던 것 같다. 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이라는 것이 그걸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롤링다이스]에게 중요했던 것은 ‘우리가 일하는 일터를 우리가 직접 소유하고, 일하는 사람과 주인 되는 사람이 일치하는 구조 안에서 일을 하자. 그리고 민주적으로 운영이 되도록 하자.’였다. 조금 더 나아가면, 지금의 규모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1인 1표도 아닌 합의제이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한다.
이한나(이하 이) - [롤링다이스]가 처음부터 협동조합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정치경제 공부를 하면서 금융사나 자본주의의 문제점, 대안경제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다 보니까 협동조합으로 가게 된 거다. 언니가 주로 어떤 책을 해보자고 제안하셨는데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었다. 목적성을 가지고 협동조합에는 이런 것이 있으니까 해보자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부를 하는 중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우리한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지금 협동조합들의 사례들을 보면 일부러 교육을 하고 협동조합의 원칙을 외우게 하는데 우리는 그게 자연스럽게 되었다는 것이 참 좋다.
친해졌다고 마음이 맞아졌다고 말씀하셨지만 마음이 맞는 것도 사실 일반 사람들끼리 마음을 맞추어가는 방식은 서로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고 자주 만나고 혹은 공통 관심사가 있는 것 등으로 많이 마음을 맞추어 가는데 우리는 정말 순수하게 공부를 하면서 생각을 맞추어 가는 것 외에는 서로 잘 모른다. (웃음) 그걸 떠나면 할 이야기가 별로 없고 그럴 정도로. 그런 상태에서 협동조합을 해보자고 했을 때 나는 ‘이게 가능할까?’라는 의심이 조금 있었는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거기에 있던 사람들 다 그걸 한 다고 하는 거였다.
제- 제안을 했던 사람으로서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당시 공부를 하고 있던 아홉 명(현재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여덟 명)에게 제안을 했을 때 ‘다섯 명 정도 한다고 하지 않을까. 다섯 명이면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한 분도 빠짐없이 다 같이 하겠다고 그러더라. 신기했다.
이 - 출자금이 백만 원이었다. 그런데 다들 선뜻 백만 원을.
제 - 돈도 돈이고. 돈도 투자지만 시간도 큰 투자이지 않나. 일종의 동업인데. 그래서 처음에 시작할 때, 아예 “우리 2년 동안 이거 다 털어먹고 할 수 있는, 해볼 수 있는, 여행을 한 번 다녀왔다고 생각하고 2년 정도 시간을 두고, 이 돈으로 어디가서 노는 대신 창조적인 일을 생각한다고 해보고 일을 해보자.”라고 생각을 하고 시작했었다.
[롤링다이스] 홈페이지의 ‘조합원의 조건’이 인상적이었다. ‘일해야 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웃음) 사실 협동조합도 그렇고 일반 회사도 그렇고 ’내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하니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나. [롤링다이스]는 조합원의 조건을 어떻게 지켜가는가.
제 - 딱히 조건을 어떻게 지키는지, 시스템적으로 무엇이 있다기보다, 신기한 것은 다들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다들 생업이 있으니 계속 모두가 다 동일하게 일을 하지는 못한다. 일이라는 것이 회사를 다니면 회사일이 바빴다가 한가롭다가 하는데, 그러면 시간이 조금 날 때는 [롤링다이스] 일을 많이 할 수도 있고 회사일이 너무 바쁘면 [롤링다이스] 일을 열심히 못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해보니까 어떤 한 특정 순간에 꼭 백수가 한 명씩은 있다. (웃음) 아홉 명, 여덟 명이면 돌아가면서 이직을 하는데 한두 달씩 쉬는 기간이 있다. 그러면 그때 딱 잡아다가 [롤링다이스]에. (웃음)
내가 모든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인데 [롤링다이스]의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롤링다이스의 일이 재미있어야 한다.’이다. 누구에게도 의무는 없다. 우리가 월급을 주는 체제도 아니고 번 돈을 그냥 나누는 체제이기 때문에 누가 일을 안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팔목을 비틀어서 일을 하게 만드는 경우는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에게 일이 재미있든 아니면 보람이 있든, 의미가 있든. 뭔가 해야 될 동기가 있어야 하는 거지. 구조적으로 그걸 의무화 하는 방법은 전혀 없다.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동기를 부여하는 것 같다.
그렇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롤링다이스]의 지속가능성은 재미에서 온다. 우리 사업 모델은 지금 현재로서 고정비가 하나도 없다. 사무실이 일단 없고 모든 업무가 인하우스에서 다 처리가 된다. 외주로 나가는 일이 없이 내부에서 다 처리를 하니까 우리가 쓰는 비용이라고는 모여서 먹는 비용 말고는 없고 (웃음)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는 모두가 다 일할 동기가 있어서 일이 재미있기만 하면 돈을 얼마를 벌던 간에 이 비즈니스는 지속가능한 거다.
우리가 보통 일반적으로는 주중에 회사에 나가서 돈을 벌고 주말에 돈을 쓰는데, 우리가 [롤링다이스] 일을 하면 돈을 쓰는 대신 돈을 조금이라도 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소유 수익은 우리의 번 돈과 [롤링다이스]가 아니었으면 썼을 돈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왜냐하면 그만큼의 재미가 있기만 하다면 똑같은 재미를 얻는데 어디서 그 소비를 해서 재미를 얻어야 하고 여기서는 조금이라도 돈을 벌면서 재미를 얻는다면. 그건 어떻게 보면 비자본주의적 셈법이겠지만 나는 그게 합리적인 셈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