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구육 (羊頭狗肉)
비겁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북해도로 강제 징용에 끌려갔다가 친구 분과 단 둘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북해도에서 탈출해 강원도 삼척까지 걸어오는 외할아버지를 떠올려본 적이있다. 가족을 향해, 조국을 향해 이역만리 길을 걷는 모습을. 엄마는 징용에 끌려간 외할아버지가 왜놈들에게 하도 맞아서 뼛속까지 병이 드셨다고 했다. 엄마는 매일 아버지의 아픈 모습만 보았다. 외할아버지는 '골병에는 고양이탕이 좋다.'는 사람들 말에도 고양이를 잡아먹으면 자손들에게 안 좋다며 한사코 거부하셨다. 나는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흑백 사진 속 앳된 젊은 이가 나의 외할아버지라는 사실만 알았다.
사람들은 일제강점기나 친일파,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미 지나간 이야기라고 하거나 이젠 어쩔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계속 이어져 오는 것이다. 사진 속 젊은 이가 외손자 모르게 보내온 세월과 그가 북해도에서부터 걸어온 길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비겁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로 돌아가면 나도 친일을 할지 모른다." 따위의 말을 함부로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된다.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외할아버지의 수염이나 웃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굳이 이 나라 역사에 대한 철학이나 반성이 없더라도, 말도 행동도 생각도 습관도 인격도 운명도 비겁하지 않아야 한다. 비겁하지 않아야 한다. 비겁하지 않아야 한다.
이 꽉 물고 또 잠에 든다. 꿈 속에서 나라를 팔아 먹는 놈들과 나라를 팔아 먹을 만한 놈들을 본다. 그들은 아직도 양의 머리를 내걸어 놓고 개고기를 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