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외국인의 존재다. 미군 부대가 위치한 용산, 그리고 70년대부터 외국인 밀집지역으로 유명했던 이태원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이태원 문화의 직접, 간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그 덕분에 일반적으로는 심리적으로 ‘이태원’에 속하기도 한다. 그렇게 볼 경우 한남동은 이태원과 비슷하게 ‘외국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재미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외국인, 외국문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한남동을 이야기하는 데에 이 부근에서 오래 살았거나 잘 알고 있는 외국인의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남동에서 살고 있는 내국인과 외국인은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한국인 거주민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하기 위해 한남동에서 살게 된 반면, 외국인은 미군이나 대사관 직원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이렇게 다른 상황만큼이나 하나의 동네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를 것이다.  그 구체적인 모습을 미군부대에서 약 25년 동안 근무하며 때로는 한남동에서 살기도 했던 켄 Ken, 전 레바논 대사의 아들로 지금은 이태원에서 살고 있는 마젠 Mazen과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남동은 이태원과 연결은 되어 있지만 너무나도 다른 곳입니다”

KEN Adums(57세)은 1985년 2월 한국 포항에 왔다. 해병대에 있던 그는 86년 경북 예천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1995년 돌아갔다가 2000년에 서울 이태원으로 왔다. 처음 살았던 곳은 군인들을 위한 숙소였던 이태원 크라운 호텔 뒤쪽 ‘청화빌라’. 미군부대 내 학교에서 일하는 그는  시끄럽고 복잡한 이태원보다 산책할 수 있는 한남동 근처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미군은 한남빌리지에 살고 있다. 2014년 12월에 문을 닫고 평택으로 갈 예정인 한남빌리지는 미군 가족을 위한 거주지로 그 안에 야구장과 교회 등 필요한 시설들이 모두 있다.

미국인 대부분은 이태원에만 있다. 그가 처음 왔을 때는 송탄 등으로 운전하는 것이 쉬웠지만 요즘은 차가 많아져 1시간 이상 걸린다. 그런 교통체증 때문에 다른 외국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운전과 교통이다. 그래서 쉽사리 이태원 밖을 나가지 못한다. 그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텍스 프리tax free 때문에 한국인들이 외국인 관광지역에 오는 것이 금지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올림픽 당시 이태원은‘미라클 마일’로 불려

일요일 오전에 부인과 이태원 교회에 가는 그는 예전과는 다른 이태원을 본다. 요즘은 미국인보다 한국인들이 더 많이 쇼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80년대에는 외국인 관광객뿐이었고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환영받았다. 그 시절 이태원에 대해 "올림픽 때 이태원은 정말 가득 찼다. 24시간 내내 가득 찼다. 돈을 바꿀 수 있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은행과 벤 앤 제리스 아이스크림이 정말 잘 됐다. 클럽에도 정말 사람이 많았다. 올림픽 이후에 이태원은 더 발전했다. 당시 이태원은 ‘미라클 마일³’이라고 불렸다. 장사를 한다면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태원에서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고 가격도 합리적이었지만 사람들은 공격적이었다. 값을 깎지 않으면 바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상인들은 아주 친절하다.”라고 기억한다.

³미라클 마일 - 쇼핑 상가 밀집 지역일 일컫는 말.

2002년 월드컵 때보다 올림픽 때 훨씬 더 붐볐던 이태원에는 레스토랑, 가게 모두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통해 상인들이 외국인들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서비스는 정말 안 좋았던 옛날 음식점들도 지금은 서구식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점도 미국인 인 그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이태원과 마찬가지로 한남동도 그랬다. 현재 순천향병원의 경우 점점 더 많은 외국인들이 이용하고 있는데 외국 인턴들이 있고 가격이 세브란스와 같은 큰 병원보다 싸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80년대 한남동에는 별로 끌리는 것이 없었다. 한남동에 대해서 들은 것이라고는 한남 빌리지 정도. 그러나 그건 그냥 아파트이고 중요한 것이나 매력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 미국인의 눈에 비친 한남동의 모습이다. 미군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홍대와 신촌, 이태원이 유명할 뿐이다.

90년대 한남동은 그 전에 비해 세금, 가격 모든 것이 올라갔다. 큰 집들이 많이 생겼고 독일 음식점ⁿ과 영국 유치원이 있었다. 남산에도 음식점들이 있었지만, 이태원이 가기 편하고 더 합리적인 가격의 레스토랑이 많기 때문에 남산 쪽은 가지 않는다. 재벌들이 그쪽 땅을 사는 현상에 대해서는 그것은 그저 한국인들의 관심사일 뿐 외국인에게는 큰 신경거리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군의 대부분은 군대로부터 거주 지원금을 받는다. 그래서 비싼 집값을 감당할 수 있다. 처음 그가 청화빌라에 살았을 때는 18개월 집값을 한꺼번에 내고 들어갔다. 최근 2, 3년 사이에 오른 제일기획 근처 집값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 "한국 집주인들이 욕심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ⁿ 한남주민센터에서 순천향병원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독일 호프는 여보여보 클럽 옆에 있었다.

한남동은 한국의 퀸스나 브루클린

그에게 한남동을 미국의 지역과 비교해 달라는 물음을 던졌다. “글쎄... 이태원하고는 다르다. 주거지역이다. 물론 역시 모두가 바쁘지만 사람 사는 곳이다. 아마도 뉴욕의 퀸스나 브루클린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한남동과 이태원을 바라보는 외국인과 내국인의 시각이 달라서 재미있어하는 조사원들의 반응에 그는 말을 덧붙인다. "이태원과 한남동은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너무 다르다. 제일기획 밑으로 캄보디아 대사관, 순천향대병원까지 한남동은 외국인들에게는 아무 특별할 것이 없다. 그냥 그곳에 살고 있으니까 집 앞 있는 편의점에 갈 수는 있지만, 이태원처럼 특별한 곳은 아니다. 제일기획 밑으로는 주로 나이 든 외국인들이 많이 산다. 그곳은 무척 비싸다. 과장된 가격이다. 2년에 90000달러일 것이다.”

한남동에 사는 외국인들은 민간인과 군인 둘 다 있다. 하지만 민간인이라도 군부대 일을 하는 민간인으로 DOD⁴민간인이라고 불린다. 계급이 높은 군인들이 한남동에 주로 살고 계급이 낮은 군인들은 한남 빌리지 안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 대부분은 미군 부대 내에서 이루어진다. 미국인에게 한남동은 어떤 상업이나 업무 기능을 가진 것이 없는 동네로 비추어질 뿐이다.

⁴DOD - Department of Defense. 국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