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단 마을은 산비탈에 위치한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도깨비시장이 들어서 있다는 점이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현재 도깨비시장을 포함한 그 주변 지역은 남계천길, 해맞이길, 제청전길 일대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 이 일대가 어떻게 조성되었으며, 또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남동 토박이를 만났다.

정광태 선생(67세)은 한남동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에서 살았다. 서울에서 보기 힘든 소박한 경관을 간직한 도깨비시장 일대. 그곳에 얽힌 옛 이야기를 들어본다.

도깨비처럼 반짝 열리는‘도깨비시장’

도깨비시장이란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나요?

원래 옛날에 저 마을이 원래 판자촌, 수재민들이 와서 만든 데야. 그래서 아랫동네 사람들 장이 끝난 뒤에 반짝 시장이 열리는 거지. 길게 안하고 반짝 한다 그래서 도깨비 시장이라 그러지.

도깨비시장일대, 그러니까 남계천길, 해맞이길, 제청전길에 수재민들하고 철거민들이 이주할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으신가요?

그때 한남동이 72년도에 장마가 들었었지. 우리 집이 한남 교회 옆에 큰집이었는데 내가 72년도에 군대 제대하고 들어오니까. 안방에서 밥을 먹는데 구들장이 빠지는 거야. 보니까 물이 막 올라오는 거야. 그러더니 단박에 1층이 차버리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2층 옥상에 올라갔어. 그때 여기가 한남 광주 고속버스 주차장이 있었거든 우리 집 앞이. 거기 사람들이 난리가 나서 고속버스 타이어를 네 개씩 묶어서 합판을 갖다 놓으니까 그게 완전 배야. 뗏목 식으로. 거기 있는 사람들 다 그거 타고 끌고 나왔다고.

옛 나루터 근처는 조선시대부터 얼음 창고

도깨비시장은 한남동과 보광동의 경계에 위치해있는데요, 보광동은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데다 6.25전쟁 이후 상이용사 주택을 제외하면, 공동묘지화 되었다고 들었어요.

옛날에 펌프장이 한남동 나루터였는데 지금 여기 현대 플라자인가 거기가 옛날에 얼음 창고였었어. 한강볼링장이 한국일보사에서 했다가 아파트로 들어온 데인데 옛날에는 얼음 창고였다고. 그래가지고 한강에서 물이 꽁꽁 얼잖아? 그럼 그걸 톱으로 잘라다가 얼음 창고에다 재어났다가 여름에 쓰는 거지. 이씨 조선 때인가 그때부터 내려왔어. 양진고개라고 그러는데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무서워서 못 다녀. 달걀귀신이라는 거 있잖아. 그게 나타난다고 그래서 못 다녔었다고. 지금은 길이 났지만 옛날엔 기찻길 밖에 없었거든. 그런 유래가 있는 데야. 얼음 창고는 옛날 이조시대 때 한남동 나루터에 얼음 창고라는 게 나와. 근데 지금은 다 없어지고 거기 가보면 일부 유적이라는 게 남아있는 걸로 알고 있어.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다 보고 다녔기 때문에 알지.

용산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보광동 일대에서는 부녀자들이 미군들의 빨래를 하며 생계를 잇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요. 보광동 시장 자리는 도랑물이 내려오고 반들반들한 바위가 많아 서 옷을 빨기에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한남동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그렇지. 보광동 사람들은 옛날에 산동네라 했는데 어디 수재민들이 옮겨와서 산 것이거든. 그래서 여기다 데려다놓고 살아라, 그러니까 판잣집 짓고 산거지.

‘해맞이길’은 동쪽에서 올라오는 아침 해를 맞이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일대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고 알고 있어요. 이곳은 한강 조망권이 확보되어 있어서 한남 뉴타운으로 지정되어 재개발 추진 중에 있는데요. 뉴타운에 대한 주민 분들의 의견은 어떤가요?

뉴타운이라고 지금 승인 났다, 그러는데 우리가 지금 여기서 67년을 살았는데 재개발 한다고 한 지가 벌써 40년이야. 한남역 가운데 일방 통행하는 도로 있잖아 그것도 50년 만에 길이 난거야. 우리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나는 여기서 중동을 다녔거든.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서 서울역에서 걸어갔다고. 여기서 삼각지가고 여기서 서울역하고 이거밖에 버스 노선이 없었다고. 나머진 다 마늘 밭이었어. 도시계획 확정한 게 일제시대 때 된 건데 인제 뚫어진 거야. 지금도 저기 구석으로 해서 보광동 넘어가는 뉴타운 여기에 지하 차도를 뚫어가지고 이촌동으로 넘어가는 길을 만든다 하는 게 도시 계획에 들어있다고. 여기도 제일빌딩이 이순자하고 전경환이하고 지은거야. 이게 전경환이 짓고 제일 기획이 저게 이순자가 판 거야. 그래서 사차선으로 되는 거야 원래. 김종필이 원래 순천향병원을 만든 거야. 요 앞에 복개천이야. 이 밑에는 굴이 들어가 있다고. 지금 남산아파트에서부터 물이 이리로 내려와. 우리는 자랄 때 다 목욕하고 자랐거든. 물이 얼마나 깨끗한데. 지금은 복개천이 된 거지. 여기 뒤에가 외인아파트 570 미군부대이고.

‘한남대교’는 오고, ‘용산시장’은 가고

이슬람 성원이 생긴 무렵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내가 군대 갔다 오니까 그게 생겼지. 내가 72년 2월에 군대 제대하고 나오니까 한남대교도 놓아져있더라고. 이 다리를 놓음으로써 강남 땅값이 500원에서 10만원 20만원 1000만원 이렇게 된 거야. 옛날에 그 사람들이 소 마차 끌고 와서 동대문도 가고 했던 거지. 잠실에 있던 사람들은 배타고 내려와서 여기서 물건 팔고 올라갔다고. 옛날엔 한남동에 재래시장이 컸었어. 사람들이 다 농사지어서 여기로 와서 팔았다고. 그때 용산시장도 엄청 컸었지. 여긴 도매시장이었는데 이태원, 보광동, 동빙고, 이촌동, 약수동, 신설동, 신당동, 옥수동, 금호동 이런 사람들이 다 여기 와서 도매로 물건을 떼다가 가져다 팔았지. 그걸 동네에서 잘 유지해야 되는데 다리가 딱 놓이니까 지장이 있었지. 가락시장이 거기로 간지 한 이십년밖에 안됐지. 용산 시장이 가락시장으로 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