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이야기 보다는 가리온과 힙합이 어떻게 홍대에서 자리를 잡고 성장해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소위 ‘가리온‘을 힙합 1세대, 한국 힙합의 최전선이라고 말하는데, 그런 입장에서 가리온에게 신촌이나 홍대라는 장소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요?
메타 : 저희에게 홍대는 그냥 서식지죠. (웃음) 우리가 먹고사는 실질적인 공간이기도 하고, 실제 활동하는 필드이고요. 예를 들어 저희가 다른 지역이나 다른 무대나 다른 공간에서 활동을 하다가 홍대나 신촌 쪽으로 왔다면 특별한 의미나 그런 것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저희는 처음부터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는 가지지 못해요. 예를 들어 나찰이나 제가 지방에서 활동을 하다가 홍대로 ‘입성’ 을 한 후 자리매김을 했다면 홍대에 대한 의미가 특별했겠지만, 저희는 애시 당초 이곳에서부터 생겨난 팀이기 때문에 홍대를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나찰 : 시작한 공간이기 때문에, 애착이 가는 것은 맞는데, 이제는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긴 해요. 하하. 막연하게 ‘여기 싫어‘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봤을 때 홍대가 아닌 다른 문화적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죠. 지방공연 다니면서 보면 안타까운 점이 많아요. 지방은 둘째치더라도 서울지역 내지는 경기도일대만 하더라도 이런 환경이 없잖아요.
힙합이라는 문화가 홍대에서 생겨나던 시기에 기존의 홍대문화를 구축하고 있던 세력으로부터 알력행사 같은 건 없었나요? “힙합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홍대가 지저분해 졌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메: 그 말에 대해선 어느 정도 공감해요. 사실상 저희가 처음 시작하던 90년대 중 후반 때, 저 개인으로는 96~97년, 당시에 홍대의 어떤 필드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제가 있던 동호회에서 간혹 한 달에 한 두 번이라도 자체적인 행사나 음악 감상회가 있었잖아요. 음감회 같은 것을 할 때 대관을 해서 공연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약간 약간씩 움직였어요. 그맘때만 해도 홍대에선 힙합이라는 단어조차도 없었어요. 그냥 저희 같은 동호인들을 통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정도였죠, 일회성이고 단발적인. 그런데 그때 홍대 신촌은 그냥 ‘록’이었죠. 아시겠지만, 대한민국의 음악사적으로 봤을 때 90년대 초반까지였나요? 그러니까 90년 초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와서 가요계를 평정하기 직전까지였어요. 제 기억으로는요, 우리나라는 록과 발라드가 완전히 장악을 했었어요. 언더그라운드는 록 음악이었고. 그맘때쯤에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고 얼터너티브 록을 포함한 모든 록 씬이 급성장을 한 때였어요. 당연히 저희는 제대로 시작도 못했었죠. 그런데 97년 말에 공식적으로 MP가 시작을 하면서, 매주 힙합공연이 열리고,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위치도 아주 묘했어요. 아시죠? (웃음) 롤링홀 바로 옆에 홍대 신촌 사이란 말이에요. 그러면서 홍대 쪽에서도 그 영향을 받고, 슬러거와 같은 힙합을 하는 클럽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주변 인식들이, ‘아 이제 힙합도 생겼다.’ 그리고 그맘때 쯤 언더그라운드 쪽에서는 트랜스나 테크노 뮤지션들도 막 생기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제가 느끼기에는 그 당시 록을 하시던 분들은 많이 받아 들였었어요. 단적인 예로 당시 꽤 한국에서 명망 있던 팀들과도 아주 문제없이 올 라이브를 많이 했었어요. 노이즈가든, 힙포켓이랑도 라이브 무대에 같이 올라갔었어요. 어떤 음반이나 음악적 결과물을 낸 건 아니지만, 무대에서 계속 같이 했어요. 락 씬에서도 긍정적으로 본거죠. 래퍼들이 대중가요에서 힙합이 매우 가볍고 왜곡되어 비추어 지는 것을 싫어하듯이, 락커들도 락이 그렇게 표현되는 것을 싫어했어요. 그건 누가봐도 구리잖아요. 그런데 제대로 된 래퍼들이 나오니까, 락커들도 음악적으로 열려있었던 거죠. MP자체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었죠. 어떠한 형태로든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었는데, 바람과는 다르게 2002년에 문을 닫아버렸다 말이에요. ‘홍대가 힙합 때문에 지저분 해 졌다’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엠피가 계속 존재했다던가, 아니면 그 이후의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거예요. 그런데 MP가 공연장으로서의 공간을 없애버리고, 기획사가 되어버린 다음부터 저희가 설 곳이 없어졌어요. 가리온도 MP랑 헤어지고요. 그 이후로 자체적으로 저희끼리 활동을 했었는데, 한계가 있었죠. 2002년에 압구정에서 크레이지라는 클럽에서 공연장을 5개월 운영하다가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결국 문을 닫았어요. ///힙합이라는 것에 대한 스타트를 시켜놓고, 사람들이 힙합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 즈음이죠.///
막판에 MP가 문 닫을 때 장난이 아니었잖아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메: 무지무지하게 많이 왔었죠. 금요일 공연도 100명이 넘게 왔나? 그런 식으로 매주 하던 것이 없어지니까, 사람들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그 때 비집고 들어온 게 파티문화였어요. 그 전부터 존재는 했지만, 거의 2002년인가, 2003년에 아프로킹 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아프로킹이 부비부비와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야기 했다고 하는데,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해요. 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 거죠. 그런데 문제는 그걸 보고 다른 장사꾼들이 얍삽한 계산을 하기 시작한 거죠. (나찰 : 그쵸. 그게 포인트죠.)
중요한건 MP가 문을 닫으면서 MC들이 설자리를 잃었다는 거군요.
메: 저희 입장에서의 단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가리온은 더 이상 공연무대에 설 곳이 없어진 거예요. 저희는 ‘라이브‘에서 태어난 팀인데 말이에요.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그나마 아프로킹같은 파티기획팀들이, 적어도 파티지만, 공연프로그램을 넣었단 말이에요. 당시 아소토유니온과 같은 팀과 같이 올라가거나 저희 팀만 따로 올라가거나, 이런 식으로 댄스 위주의 파티에서 한 무대씩 줬단 말이에요. 그게 저희에게는 주눅 드는 상황이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무대에서 매주 저희는 트레이닝을 하는 기분처럼, “다음 주에는 이런 걸 해보자”, ”다음 주에는 신곡 발표를 할 거야”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흐름이었는데 그것이 단절된 상태에서, 드문드문 한 달에 한두 번, 많게는 네 번, 파티무대에 올라가서, 저희를 보러오거나 저희 음악을 들으러 온 게 아닌 춤추러 왔다가 그냥 서비스로 보는 정도의 무대가 되어 버리는 거니까, 저희가 주눅 들게 되더라고요.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더 비참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조차 없어 졌다는 거죠.
그때 당시 DJ들은 어땠나요?
메: 클럽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생각을 하기에는 힙합이 제대로 된 베이스를 깔지 못한 상태에서 MP가 문을 닫거나, 공연문화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 부작용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는, 힙합의 제대로 된 맛들이 가지치기 당해버리니까, 사장님들이 생각하기에는, 힙합이 인기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거죠. 그 맘 때 같이 물려서 하우스라든가 트랜스 음악이 유행하자 힙합은 인기가 없어져 버렸어요. 그리고 힙합DJ들이 가지치기 당하죠. DJ들은 “어? 나는 힙합 DJ고 힙합의 수혜자들인데...” 힙합을 듣고, 인생이 바뀌어서, 턴테이블을 잡고 믹싱을 하고 스크래칭을 하고, 투 잡을 했는데, 그걸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에요. “아 저 힙합 DJ 인데요?” ”그래? 그럼 나가. 난 딴 DJ 구하면 되니까“ 이렇게 된 거에요. 만약에 그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문화적인 베이스가 이쪽 바닥에 있다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거기에 대한 기댈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한 번 더 제고하거나 거기에 대한 힘을 얻어서 바꾼다거나 할 텐데, 그런 것이 아예 없으니까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어지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아 그래요. 그러면 알겠습니다. 사장님” 하고는 빌보드 탑 텐부터 해서, 가리지 않고 틀게 되는 거죠. 그건 어차피 DJ들의 이야기고,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으니까,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한 일면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가 느끼기에는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그 당시 몇몇 케이블과 같은 미디어에서 당시 클럽과 파티에 대해서 엄청나게 다뤘어요. 음악적인 것이 아니라, 파티나, 파티에서의 DJ들과 그런 DJ들의 음악들에 열광하는 뭔가 스타일리시한 것들, 부비부비라던가 그런 것 들이 아주 좋은 아이템으로 보였던거죠. 거기에 집중조명을 때려버리니까 저희는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느낌.’ 그런 느낌까지는 아니더래도 ’힙합이 뭔가를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망가지는 구나’ 그래서 이야기가 좀 길었지만, 아까 ‘힙합이 들어와서 홍대를 지저분하게 했다’는 말에 공감한다는게 이런 측면입니다. 솔직히 힙합 들어와서 어떻게 됐냐는 거죠. 지금 홍대가 ’힙합-씬“이 있어요? 아니면 힙합이 문화가 되었느냐는 거죠. 그런 상태에서 뭐...
(나찰 이어받으며)
나찰 : 저희들도 이야기해요. 음악 하는 친구들 이랑도 이야기하는데, 지금 홍대바닥에 힙합은 없어요. 사실입니다. 수많은 클럽들도 힙합클럽이 아니고 어떤 Bar에서 흑인음악만 전문적으로 튼다고 해도 이슈가 될 정도에요. 그렇게 되어버려서 저희들도 굉장히 가슴이 아픕니다.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님과도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리드머는 홍대 힙합 씬과 제대로 된 마인드를 가진 뮤지션들을 지원하고 도와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공간인데, ‘과연 우리가 도와줄 힙합 씬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메타 : 예, 맞아요.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죠. 작년 10월에 2집이 나오고 저희도 처음으로 디지털 음원이 나왔어요. 그래서 그런 음원들이 어디서 어떻게 판매가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관심 있게 한번 봤단 말이에요. 놀랐던 게, 저는 그렇게 많은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래퍼들이 있는지는 몰랐어요, 이름도 음악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저는 진짜 약간 충격 받았어요. 거기에 보니까, 카테고리로 들어가면, 현재 가장 판매가 잘 이루어지는 차트별로, 순서대로 쫘악 있는데, 50위까지인가? 저희가 없더라고요. (일동웃음) 그래서 ‘아 우리 되게 인기 없는 팀이구나. 우리보다 위에 있는 인기 만발의 팀들은 어떤 팀들인가?’ 봤는데, 정말 손꼽을 수 있을 만큼 모든 대중들이 아는 인기 있는 많이 알려진 팀들은 사실상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그 수보다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의 정말 못 들어 본... 예를 들어서 ‘MC 녹차라떼’ (편집자 주 : 까페에서 MC메타가 주문한 음료가 녹차라떼였다.) 뭐 이런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근데 보니까 그분들은 아예, 무대라던가... 물론 그분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없어서 그랬겠지만, 그냥 온라인상에서 어떤 시각적인 이미지들 만들고.. 물론 시각적인 이미지가 2번째겠죠. 음악을 먼저 만들겠죠. 그리고 디지털 싱글로 공개를 하고요. 왜곡 시켜서 말하자면, 온라인상의 블로그나 싸이월드나 이런 곳에 걸기 좋은 스타일의 음악들을 만드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엄청난 다운로드 히트수를 기록을 하면서 순위권에 올라가고, 그게 당연히 보는 대중들에게는 ‘이게 이 시대의 흐름이다.’ 인식을 하게 되는 거고, 그런 만큼 다른 색깔을 가지거나 측면에 대한 느낌을 만들려고 하는 뮤지션들에게는 더 기회가 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언제부터인가 힙합 씬이 거리에 존재하지 않고, 인터넷에 존재하기 시작했어요. MC들이 관중 앞에서 랩을 하는 게 아니라, 집에 홈레코딩 시스템 차려서, 집에 있는 마이크에 대고 랩을 하기 시작한거죠. 앨범 같은 경우에도 언더그라운드나 인디뮤지션들이 대부분 공연으로서 이루어진 다음에, 그곳에서 괜찮은 반응을 본 후 앨범을 내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샌가 힙합 씬을 보면, 난데없이 앨범을 내고 나서, 공연을 하다가, 앨범을 또 내고, 다시 공연을 하는데, 이것이 과연 힙합이냐 이거죠.
메: 모양새만 볼 때는 메이저에서 하는 시스템이랑 똑같아요. 메리트가 없어요. 저랑 나찰은 처음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지금으로 치면 ‘덕후’였죠. 저희는 랩만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힙합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한 문화적인 측면에 대해서 더 많이 느끼고 싶고 알고 싶었어요. 우리가 그런 문화에 대해 탐닉을 하다가, 저희 스스로 하게 된 이유도 하나였단 말이에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을 수 있는데, 문화까지는 모르겠지만, ‘왜 랩음악이 안 나오지?’ 의문이 많다가 스스로 하게 된 경우에요. 그런데 그렇게 시작을 해서, 저희가 바라고 있던 건 아주 단순한 하나였어요. 그런 문화가 분명 ‘오버그라운드’라고 표현하는 대중성을 고려한 상업적인 시스템과는 잘 안 맞는 장르이자 문화라는 것을 느꼈어요. 당시 우리가 듣던 음악에서도 래퍼들이 그런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물론 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그래서 확실하게 저희가 느꼈던 게, 맨 처음 저희가 썼던 가사, 가리온 1집이 그런 색깔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거였어요. 분명 차별화시키기 위해서, 왜냐면 저희는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쪽 시스템이랑은 무관하게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시간을 건너뛰어 지금의 것을 보면, 그때 당시에는 그래도 저희는 느꼈던 것이, 수적으로 굉장히 적고 공간적으로도 협소하고 적었지만, 분명 ‘이름’있는 공간이 있었거든요, ‘언더그라운드‘라는. 그런데 지금의 언더그라운드는 ’이름‘이 없어요. 도대체 지금 메이져에서 하는 것과 뭐가 차이가 있느냐 하는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앨범내고 한 달 동안 빡세게 프로모션 하고, 두어 달 하면 롱런하는 거고, 한 세달 뒤에 잠수타고 작업하고 다음 것 내고, 다음 것 내고, 다음 것 내고, 그냥 공장이 되었어요. 앨범 찍어내는. 그냥 공돌이 공순이가 된 거에요.
“오버에 가지 못해 언더에 있는 거다“라는 건가요?
메타 :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죠. “너희 여기 왜 있어?” 라고 노골적으로 물어봤을 때, 그걸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지금은 언더에서의 래퍼들이 말하는 콘셉트, 주제, 아니면 취하고 있는 태도? 이런 것들이 힙합을 콘셉트로 해서 데뷔하기 위해 준비하는 연습생들이랑 뭐가 다르냐 하는 거죠. 아무 차이가 없어요. 지금도 확실하게 느끼지만, 저희는 언더그라운드가 하나의 attitude로서의 명확한 의미가 있는 거지, 어떤 자격증처럼 “언더그라운드 MC 1급입니다.” (일동 웃음) 이런 게 아니잖아요. 한때는 그런 비슷한 자부심같은 것도 있어서, “나 언더야” 하는 팀들이 있었어요. 그래도 차라리 그런 이야기 하는 게 보기엔 꼴사나워도 오히려 나았어요. 되게 있어 보이는 척 내지는 ‘뭔가 있나봐?’ 이런 느낌이라도 줬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누구하나 나서서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이다." "언더그라운드 Represent 한다." 이런 사람들 없어요. 그래도 좋아요.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본인이 어디서부터 수혜를 받고 이렇게 할 수 있는지 인식을 못 한다는 건 문제가 있어요.
나찰 : 여긴 악순환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희도 뭐라고 하죠. 베드룸 BEDROOM MC들 한테 뭐라고 하죠. 밖에 나가서 보여줘야 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실제로 잘하는 신인, 잘하는 꼬맹이라는 표현을 할 수 있는 MC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도끼 이후로는 안 나오더라고요. 도끼정도만 해도 마지막 끝물을 탔어요, (일동 웃음) 공연에 설 수 있는. 90년대 초반부터 사람들이 끝까지 버텨보려고 공연을 만들고 공연 브랜드를 만들어서 해보다가 안 되니까는 하나씩 빠지고 지금 사실상 설 수 있는 신인들, 아니면 내가 가서 뭔가 뽐내고 싶은 친구들이 설 곳이 아예 없어져 버렸어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저희들도 안타깝고 답답해요. 왜 그래야 되는가에 대해 고민을 처음부터 또 다시 하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