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을 명소로 만든 중심에는 T자 골목이 있다. 또모루 타코집과 합덕슈퍼를 통해 이 골목의 20, 30년 전을 살펴보았다면, 이 골목이 유명해지기 직전 동네로 흘러들어와 골목 고유의 특색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간 공간을 인터뷰했다. 바로 T자 골목에 자리잡아 많은 디자이너, 회사원, 작가들의 쉼터가 되고 있는 카페눈의 김교은 사장님과 리움 박물관 가는 길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초능력 카페&바의 바이홍 사장님이다. 또모루 타코집과 합덕슈퍼 사장님들께서 동네 주민의 눈으로 골목의 변화를 말씀해주셨다면, 카페눈과 초능력 사장님들께서는 동네에 유입된 외부인, 그러나 그 변화의 중심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골목을 바라본다. 그 시선에는 골목이 변하게 된 배경과 흐름, 지금의 모습까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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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과 친구처럼 담소 나누는 ‘카페 눈’ 김교은 사장님

카페눈의 김교은 사장님(39세)은 T자 골목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인 2008년 1월 한산한 이 골목에 카페를 열었다. 지금의 플리플리와 선인장 자리는 5년 전에는 물건을 쌓아두는 창고와 니나노 술집 ‘예지촌’만 있었고, 카페눈 맞은편 지금의 <헤븐> 자리에는 커다랗게 ‘쌀’이라고 쓰인 쌀집이 있었다. 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어있는’ 곳이었던 이 골목에 우연히 오게 된 그 때를 사장님은 이렇게 회상한다.

왜 이 골목에서 카페를 시작하셨어요?

원래 삼청동에서 (카페를 하던) 경험이 있어서. 일단은 뭐 카페가 좋아서 했겠지? 그리고 카페와 동반되는, 책 읽고 그런 감수성이 맞아야 하잖아. 사업적으로 큰 대로변에 있는 카페를 하는 게 아니라, 찾아와서 나랑 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는 그런 카페. 그러다가 삼청동이 뜨면서 삼청동에서는 못살겠다, 하고 카페를 접고 어디에서 할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이 동네에 놀러오게 됐어.

이 자리는 원래 뭐였어요?

일단 비어있었고, 창고였어. 이전에는 오토바이 가게도 했었고 인쇄소 가게도 있었다는데 운명이 이 길로 이끌었는지... 포기해야 되나, 자리 날 때까지 일 년 쯤 쉬어야 되나 이러고 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술 먹으러 여기 한남동에 왔다가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저기 제일기획이 있는 거야. 그때는 제일기획이 뭔지도 몰랐어. 그러다 아는 언니가 “제일기획도 있으니까 해보라”고 한 거야. 그 다음날 가서 그게 아직도 있을까, 한번 가볼까 했는데 자리가 아직 안 나간거지. 그걸 누가 사냐, 동네가 죽어가는 데 뭘 하겠어. 부동산 아줌마가 그랬어. 지금 다 망해서 나가는데 아가씨가 도대체 음식점도 아니고 무슨 커피숍이냐고. (호호호호) 너무 신기할 거 아냐. 그 때 여기 걸어 다니는 애들은 트랜스젠더 아니면 술집 종업원들이었는데.

구두 굽 높이가 손님의 취향 드러내

운명처럼 이 골목에 카페를 연 사장님은 초반에는 지나가는 트랜스젠더들과 서로를 신기해하며 첫 손님을 기다렸다. 지금은 제일기획을 비롯한 근처 회사원들과 패션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영화, 미술 등 작업하는 사람들이 종종 찾아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근방에 모여 있는 카페눈, 플리플리, 선인장을 찾는 손님들이 직업은 다들 비슷하지만 분위기와 취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김교은 사장님은 손님들의 구두 굽 높이가 그 차이점을 잘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보통 카페 눈을 찾는 손님들이 대부분 낮은 굽의 신발을 신는 회사원이라면 선인장을 찾는 손님들은 높은 굽의 디자이너들이 많다.

카페눈이 생기고 나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는 파생효과”로 디자이너 숍들과 카페들, 술집들, 심지어 빵집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지금 합덕슈퍼 맞은편에 원래 반가네 칼국수가 있었고, 그 옆에 예란지라는 디자이너의 패션숍이 있었다. 란지 디자이너를 찾아 이 골목을 찾은 사람들이 골목의 매력에 반하게 되고, 이곳에 자신의 가게를 내게 되는 것이다. 카페눈 앞 <헤븐>이라는 바도 그렇다. 뿐만 아니라 김교은 사장님을 찾아 삼청동에서 온 사람들과 작가들도 그렇게 한남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매스컴의 영향으로 T자 골목이라는 이름이 붙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명세만큼이나 사람이 더 많아지고 매출도 더 올랐을 것 같지만 사장님은 오히려 옛날보다 사람이 더 적어졌다고 한다.

이 골목이 지금 더 화려해졌나요?

그런 변화는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옛날이 더 많았지. 미술 하는 사람들과 작가들이 많이 빠졌어. 작가들보다는 오히려 패피(패션피플)들이 더 커피를 안 사 먹지. 작가들은 소소하기도 하고 늘 커피를 먹어야 돼. 돈은 없어도. 왜냐면은 그게 사치를 부리는 것이 아니고, 사색하고 원동력이 되는 것과 늘 같이 가는 게 커피거든. 그런데 월세가 너무 높아지고 밖에 화려한 것들이 많이 생기면 본인 스스로 못 견디는 거지. 더 구석으로 가고 싶고. 일반적인 데서 내가 편하게 있고 싶은 곳을 좋아하는 거지. 그런 이유로 삼청동에서도 작가들이 많이 빠졌지. 그리고 이곳도 작가들이 많이 빠졌어.

최근 몇 년간 월세 20~30% 올라

2010년 지금의 플리플리와 선인장 옆 건물에는 <공간 해밀턴>이라는 전시장이 생겼고, 그 맞은편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의 스튜디오가 있었다. 이듬해 2011년 골목 끝에 복합문화공간인 <꿀풀>과 작은 공연장인 <꽃땅>이 생겼다. 그곳은 2013년 봄에 문을 닫았고, 지금은 카페 <리브레>와 <아마도 예술>공간이 들어섰다. 이처럼 한남동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생소하지만 작고 소소한 예술공간들은 2, 3년 동안 자리를 지켰고, 그 덕분에 2010년부터 2013년 초반까지 작가들이 이 골목을 찾으면서 카페눈도 자연스럽게 작가들의 모임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었던 골목의 분위기는 이들이 사라지면서 또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 중에는 최근 몇 년간 20-30% 정도로 오른 월세도 있었다.

월세가 많이 올랐어요?

많이 올라가는 추세지. 나는 다행히도 주인을 잘 만났지만. 월세가 버는 거 위주로 올라야 되잖아. 그런데 내 수입은 머물러있으니까 힘들어. 난 그냥 여기서 돈 적게 벌면서 유지를 하고 싶은데. 늘 있는 시간에만 사람이 있고 없는 시간이 더 많고 그래. 물론 주인도 시간이 가면 월세를 올리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 폭이 너무 높아진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나라가 오래된 매장이 없는 거야.

인터뷰 - 성지은, 정지원(마을 안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