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울책보고에서
서울책보고에서 구매한 김관식 시인의 시집 <다시 광야에>를 머리맡에 두고 밤마다 읽습니다. 홍은동 산기슭에 ‘시인의 마을’을 만들려고 했던 그를 떠올리다가, 새벽이 되면 골목을 기웃거리며 걸어보기도 합니다. 이제 홍은동에서 그의 발자취를 찾기는 어렵지만, 책 곳곳에 작가가 남겨둔 그 시절 서울의 정취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절한 시인의 시를 모아 엮은 이 시전집은 절판된 지 이미 오래여서 항상 인터넷에 떠도는 시를 찾아 읽곤 했는데 서울책보고 공공헌책방에 상태 좋은 초판본이 남아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은 서울책보고에서 진행한 독립출판마켓과 릴레이 토크에 참여했습니다. 아침 일찍 책을 짊어지고 홍은동에서 잠실나루까지 오면서 들뜬 기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등이 아릴 정도로 가방은 무겁고 이마에서는 제법 땀이 났지만, 오랜만에 독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최근 몇 년간 마을벼룩시장이 많이 줄어들어 작지만 꾸준한 행사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갈급한 마음을 해갈해준 독립출판마켓이어서 더욱더 좋은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책보고의 개관과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울책보고와 같은 시민들이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우리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처럼 손을 뻗으면 쉽게 책을 만지고 읽을 수 있도록요. 노들섬의 노들서가나 뚝섬의 서울생각마루도 더 확장되었으면 좋겠고, 기존 도서관들의 예산도 확충되어서 읽을 수 있는 책도 더 늘어나고 사서분들의 복지도 향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서울책보고가, 서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관식 시인처럼 ‘시인의 마을’을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허락해주신 지면을 통해 ‘책의 도시’ 서울을 꿈꾸는 자유를 잠시나마 누려봅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책을 사랑하시는 많은 분들은 물론, 전 세계가 함께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견디고 나면, 먼 훗날 기억하는 오늘의 모습은 김관식 시인의 시 ‘양생수(養生修)’ 속 시 한 구절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서울책보고의 개관 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화초밭에는 은가지의 꽃송이가 빛나는 눈웃음을 그윽히 머금고 서로 잘 어울리어 아름다운 얘기를 향기로서 주고받아 한껏 즐거운 삶을 누리는 모양새를 똑똑히 좀 익혀 보아 두어라. 우리들은 모름지기 천생 여질의 착한 성품을 무양하게 자라도록 김매고 고수런해 가꾸어보자.’ 김관식 시 양생수(養生修) 中에서.
김경현 (다시서점 대표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