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기를. 입안에는 사탕처럼 달콤한 술이, 입밖에는 희망이 되는 말이, 내 손과 발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걸을 수 있기를. 그 어떤 전쟁도 의미없는 바다로 가서 바닷물을 삼키면 분노도 원망도 아픔도 슬픔도 차분해지기를. 흰 깃발을 들고 달리는 바람처럼, 수천 번의 키스 같은 파도처럼, 사람을 설 수 있도록 만드는 말과 모래처럼.

채풀잎

가볍게 떠서 무겁게 내려앉고 싶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 같은 것 따위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올 리 없다. 마음은 오늘 처음 눈을 뜨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는 동안에. 마음은 머리를 손질하고 신발을 구겨 신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에. 다시 시작되는 오늘 하루 같은 것. 그저 흘러가도 좋다. 가슴 깊이 담아두어도 좋다. 마음은 언제나 그렇게, 오늘부터 처음 시작인 것. 마음은 언제나 이렇게, 오늘 처음 가진 것.  95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어요. 장맛비에 고요한 도시, 이따금 떠오르는 계곡물 소리. 흠뻑 젖을 여유 없는 소문만 무성한 뒷골목, 씻겨가는 중에도 더러워진 것이 있었답니다. 연관검색어였던 이름은 금기어가 되었고, 오늘 밤 아스팔트 도로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펄떡펄떡. 세상에 별일이 다 일어나도 모두 눕는 건 아니랍니다. 이유가 있어도 없는 날이 있고, 오늘은 아무도 없는 날이랍니다.  101

특별한 존재는 없다. 하지만 특별했으면 하는 바람이 맹목을 만들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거짓 당위를 얻게 되면 사람들은 진실이야 어떻든지 간에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짝사랑이 이와 같고, 외사랑이 이와 같아서 나는 가장 선한 사랑만이 진심을 획득하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세상의 아주 작은 슬픔에 관하여 생각한다. 길가 위의 벌레가 밟혀 죽지 않도록 나뭇잎에 옮겨두는 자그마한 일이 남은 인생의 고독을 위로하리라 여기는 탓이다. 특별한 존재는 없다. 하지만 특별했으면 하는 바람이 우리에겐 불어서. 당신은 어디선가 어제, 또는 오늘. 특별할 사람.  115

밤마다 편지를 씁니다. 고백은 언제나 익숙지 않습니다. 어떤 비유를 해도 당신은 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에, 그런 마음마저 돌릴 수 있는 문장을 쓰기 전까지는 잠들지 말아야지 다짐합니다. 살면서 배운 것보다 살아가면서 배울 것이 더 많겠지요. 지금까지 이 세상에 핀 꽃보다 더 많은 꽃이 잎을 틔울 테지요. 내일은 오늘보다 좋았으면. 무턱대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것만으로 좋아요. 아침을 거룩하게 맞이하고 싶어서 당신에게 쓴 편지를 바칩니다. 간절함은 항상 타들어 가는 것. 창문 밖으로 잿더미를 후 - 불어봅니다. 잉크 냄새가 바람에 날려 땅으로 꺼집니다. 저기 구름이 익어갑니다. 강 건너편에 당신이 삽니다. 해가 지는 쪽에 당신이 있습니다. 나는 맑게 웃어본 지 오래되어서 거울 앞에서만 표정을 짓습니다. 이런 내가 미워서 세상을 원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기대도 없습니다. 편지를 씁니다. 아무도 받지 않습니다. 목표를 상실한 삶은 가치가 없나요. 잠들지 못한 밤은 우리에겐 낮이었습니다.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지만 사랑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아니지만 당신이듯이.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