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조각에

언젠가부터 기존 미디어와 언론이 충족시켜주지 못하던 부분을 대안 미디어가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방송, 팟캐스트, 유튜브 등의 다양한 대안 매체들이 생겼고 자리를 잡았으며 많은 이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려 합니다. 독립출판을 출판계의 대안 미디어라고 말하면 너무 큰 비약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독립출판물을 제작하던 작가들은 최근 들어 기성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기도 하고 스스로 출판사를 차리는 등의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출판을 기존 시스템의 대체재로만 볼 수도 없습니다. 독립이라는 이름이 개개인에게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10여 년 전 즈음에는 출판을 대행해주던 출판사들이 있었습니다. 얼마의 돈을 내기만 하면 책을 제작해주는 시스템이었지만 직접 책을 만들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습니다. 시중 서점에 잠시 배포되었다가 반품되는 일도 비일비재하여 저자가 엮은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소개될 방법이나 공간이 절실하던 시기였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책을 디자인하는 프로그램을 쉽게 배울 수 있고, 인쇄소에 직접 인쇄를 맡길 수 있으며 지역 곳곳에 독립서점이 자리 잡아 본인의 책을 소개할 공간도 마련되었습니다. 개개인의 메시지가 독립출판이라는 상징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정석이라는 이름의 저자가 수학의 정석 디자인을 패러디하며 엮은 책 <딸의 정석>, 작가가 20대부터 청소일을 하며 4년 동안 겪었던 일을 만화로 그린 <저 청소일 하는데요?>, 8년차 출판사 편집자가 솔직하게 써 내려간 편집자의 일기 <책갈피의 기분>을 비롯해 독립출판물의 즐거움을 만끽할 책들은 다양합니다. 어떤 책들은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조금 서툰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형서점에서 만난 적 없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매력의 소유자들이 지금도 세상을 놀하게 할, 못해도 독립책방 주인 한 명과 수십 수백 명의 독자들의 팬심을 확보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013년부터 다음 유스보이스랩,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등을 통해 학교와 청소년 단체에서 청소년 잡지 제작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첫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부담을 느끼곤 합니다. 무엇인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이루기 이전에 무엇을 꼭 해야 한다는 부담과 압박이 먼저 다가오는 탓이겠지요. 그래서 초반 수업에는 학생들과 놀면서 친해집니다. 관심사가 무엇인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잡지 제작에서의 역할을 배분합니다. 그 때문에 제작 기간이 늘어진 경우도 많지만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본인의 즐거운 경험을 맛보는 것. 그 순간이 주는 만족도 있으니까요.

저의 초등학교 4학년 교실은 도서관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실이 모자라 도서관까지 교실로 썼습니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게 되었고 교실에 있던 책들 대부분을 모조리 읽은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똑같은 책을 읽으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벌어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연이어 그때를 떠올리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꼭 읽어야 했던 필독서나 개론서, 고전이 읽기 어려울 때 마음 편한 쉬운 책들도 필요했는데 위인전과 전집만 가득했거든요. 그 시절 학생 도서관에도 그림책이나 사진집, 잡지, 아름다운 아코디언 북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종종 선생님들께서 학생들과 함께 서점에 방문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생분들이 독립출판물을 보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면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전국 곳곳에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서점을 비롯해 이색서점, 북스테이 서점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검색해보시고 미리 전화를 주시면 좀 더 수월하게 책방 견학을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몇 명씩 조를 나누어 들어오는 등의 방법으로 방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 미리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이벤트나 행사를 진행하는 학교들도 있는데 책을 만나러 온 다른 손님들께 피해가 되니 꼭 연락을 주신 뒤에 진행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좀 더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계기를 만들어 주는 방식이 독서이길 기대하고, 그 경험을 맛보는 책들을 만날 수 있길 꿈꿉니다. 그 꿈의 조각에 독립출판물이 조금이라도 비췄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면 좋을 독립출판물

수상한책2 (지금여기에, 기억발전소)

울릉도 조작 간천사건 피해 당사자의 삶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책입니다. 간첩조작으로 인해 국가라는 거대한 공권력 앞에 무너지는 개인, 그들의 가족, 그리고 희망을 놓치지 않았던 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책갈피의 기분 (김먼지)

직업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책들이 미래지향적이거나 꿈을 향한 기대를 준다. <책갈피의 기분>의 저자는 8년 동안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겪은 이야기를 솔직 담백 하게 적어냈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는 저자의 고단한 책 만들기.

Calming Influence (곽유진)

자연을 통해 받은 감동의 순간과 가보고 싶은 장소를 담은 그림책. 텍스처가 있는 두툼한 고급지에 인쇄한 수채화가 돋보인다. 영감을 받았던 순간을 표현한 작업물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다.

아티스트 지구대백과 (The Whole Earth Artist Catalog) (씨위드)

30개 이상의 도시의 300여 명의 아티스트들의 전시가 시작됩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작업노트를 만나보세요.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보려는 무모하지만 짜릿한 백과사전.

한쪽으로 읽는 도시의 속살09 도시 소년들을 위한 수필 (쪽 프레스)

아름다운 문학의 감동을 가벼운 그릇에 담아 내놓는 출판사 쪽 프레스는 한 쪽짜리 책을 출판합니다. 아코디언식으로 접지된 한 쪽짜리 책이 독자들에게 무거운 감격의 순간을 전하길 기대합니다.

다시서점 / 김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