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칼럼

사람들이 이별을 생물학적으로 구분을 지으려 할 때마다 고개를 휘젓습니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것이 아니던가요. 남자의 이별이 어떻고, 여자의 이별이 어떻다는. 혈액형마다, 별자리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개풀 뜯어먹는 소리에 우리는 눈길을 주고 관심을 두곤합니다.

소위 연애칼럼이라고 일컬어지는 헛소리에 오늘도 한숨을 쉬어봅니다. 각자의 상황과 사정이 다른데 극단적으로 설정한 그 말들에 우리가 혹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이별이란 나와 상대방을 절벽 끝으로 몰아야만 이해된다고 여길 수 있는 분열의 장르이기 때문일까요.

서로서로 원망하고 자책하는 것이 사랑이었을까요. 이별까지가 사랑이라면 그 저주의 말들은 이별의 언저리에 있는 것이 확실한 걸까요. 이미 이별까지 끝난 이후의 감정은 아닐까요.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도대체 사랑이라는 것을 하긴 했던 걸까요. 누가 답을 정할 수 있나요.

악랄한 말들과 표현에 동조하는 꼴이라니요. 맙소사. 적어도 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남자의 이별과 여자의 이별이 다르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게이의 이별과 레즈비언의 이별, 트랜스젠더의 이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나누지 않고 단지 사람으로 본다면. 결코, 우리의 이별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별 앞에 우리는 모두 아프고 슬픕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남자여서, 여자여서는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렇지 않았거나, 그렇지 않은 상황 또는 사정에 있었겠지요.

인간은 숱하게 이별에 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각자의 생각을 정의하면서 누군가는 시로, 누군가는 산문으로, 누군가는 영화나 드라마로 말을 해왔습니다. 우리가 그런 작품들을 접하며 동감했던 것들이 '몸에 무엇이 있고 없고' 때문이었던가요. 글쎄요. '마음에 있고 없고' 아닐까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상상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항상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를 '그렇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서로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는 것'은 어떤지 물어봐 주세요.

우리는 서로를 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서로를 적으로 설정하기 시작하면 모든 행위가 '적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별의 책임을 묻기보다 사랑의 틈은 어디에서 벌어졌는지를 주목해주세요.

특별한 상황으로 만들어버리면 괴로워집니다. "왜 나만.", "왜 나에게만."이라고 중얼거리지 마세요. 이별은 사랑만큼이나 우리 모두에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장애인을 특별하게 인식하고 '대우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장애가 있는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듯이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에 대해 들어왔습니다. 지겹지 않나요. 저 또한 그런 말들 때문에 생겨버린 '남자라서 말하지 못한 말'들이 많습니다. 그로 인한 이별도 있었고 그 때문에 아파했고 슬퍼했습니다. '여자라서 말하지 못한 말'들도 있었겠지요. 압니다, 암요.

하지만 지금은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달나라로 우주여행을 준비하는 시대입니다. 남자고 여자고 인제 그만 좀 나누고 그만 좀 싸우고 하나 되어 살자고요. 지겨운 혈액형 이야기는 집어치우고요. '남자'와 '여자'로 자란 상황 때문이지 그게 애초에 남자, 여자로 태어난 탓은 아니잖아요.

이별에 무게가 있다면 남자에게 더 무거울까요? 여자에게 더 무거울까요? 틀렸습니다. 더 사랑했던 사람에게 무거울 거예요. 이건 애초에 질문이 틀려먹었다고요. 우리는 남자고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라고요. 사람.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 들어본 적 없나요. 사람이 먼저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별했던 그 날. 말하지 못했던, 부치지 못했던 편지가 마음속에 남아있지는 않나요. 더 솔직해져 봐요, 우리. 집안 사정 때문에, 통장잔액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 더 깊이 사랑하는 것이 두려워서, 결혼을 망설이다가, 더 많은 이야기가...

이별의 순간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았나요. 입과 마음을 무겁게 했던 그 말들이 자물쇠가 되지는 않았었나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남아버린 순간이 풋풋하게 떠오르지는 않나요. 아마도 그 순간까지가 사랑이었을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나누고 부수어 버리고 싶어 했던.

아름다운 이별은 노래로만 존재하는 건 아닐까요. 친구 앞에서 미친 듯이 울고, 서로를 붙잡고 눈이 팅팅 붓고,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지르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름답던가요. 더 슬퍼하고 더 우울해도 괜찮아요. 그래야 사람인 걸요.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 같은 비겁한 글들과 마음을 달래주는 것만 같은 서글픈 노랫말이 이별의 상황을 해결해주지는 않아요. 그리고 알아요.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다는 걸요. 하지만 위로만큼 필요한 것은 지금의 이별보다 더 큰 사랑을 찾는 거예요. 찾지 못하겠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든 다시 만나세요. 이별은 깨진 유리 조각 같다고 하지요. 이어붙여 보세요. 그렇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잖아요. 그 사람이 없더라도 그 사람이 사랑했던 당신이니까. 그 사람을 그렇게나 사랑했던 당신이니까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믿어요.

사랑은 사람에게 온 단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는다면 스스로부터 사랑하세요. 자기부터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줄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랑의 태도로 일관하세요. 선을 긋고 나누는 이별의 태도는 버리고 사랑한다고 오늘 아침 거울을 보며 말하는 거예요.

아름다운 말들로 우리의 삶을 채워보자고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이별의 순간에 "헤어지자."고 말하지 말고 "사랑해."라고 말해보세요. 저도 그때 그 순간 그 말이 듣고 싶었고 그 말을 해야 했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그런 순간은 없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