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딴, 짓거리 / 김경현
수업시간이면 창밖을 봤어요. 공항 근처에 살다보니 비행기가 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죠. 무거운 비행기가 쉽게 뜨고 내리는 걸 보다보면 어느새 쉬는 시간이 오곤 했죠. 쉬는 시간에는 창문에 걸터앉아 있었어요. 친구들의 유치한 장난과 살아가는데 전혀 쓸모없을 것 같던 지식들이 나열된 교과서가 지루해서만은 아니었어요. 하늘을 날 수 있을까, 구름 위를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들이 저를 지배했기 때문이었죠.
수업시간에는 그림을 그렸어요. 교과서 빼곡하게 그림을 그리면 사람들은 낙서라고 말했어요. 선생님은 막대기로 이마를 콩 때리면서 집중하라고 말했죠. 칠판은 눈이 편한 녹색이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어요. 필기할 것들이 괴롭게 느껴질 즈음이면 다시 그림을 그렸어요. 따분한 수업시간을 나름 바쁘게 보내다보면 하교할 시간이 다가오고 곧장 집으로 달려갔어요. 즐겨듣던 라디오를 듣기 위해선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걸어야할 필요가 있었죠.
인기척이 없는 거실에 누워 다시 창밖을 봤어요. 은행나무가 바람에 흔들거리면 풍성한 잎들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서 낮에도 별들을 보는 것 같았죠. 냉장고에 있던 술을 조금 꺼내 마시고 책을 읽었어요. 부모님이 퇴근하시면 꼼짝없이 숙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은 미리 조금 읽어두었다가 숙제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다시 펼쳐야 했죠. 언제나 어른들은 ‘책을 읽는 것은 좋지만 해야 할 일을 해놓고 책을 읽으라.’고 말했어요.
엄마는 일기장을 훔쳐보곤 했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꾸준히 일기를 썼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엄마가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이 싫어서 단어나 표현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밤새 노래가사를 만들어 적고 나면 어느새 훔쳐본 엄마가 아침 밥상에서 말했어요. “시를 쓰는 건 좋은데 너무 비관적이야.” 아버지는 “그 딴 짓거리 하지 말고 공부나 좀 열심히 해” 라고 했고요. 힘들게 번 돈으로 공부시키는 거니까 제발 좀 열심히 하라고요.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산을 한 바퀴 돌고 집에 갔어요. 야밤에 가지 말라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죠. 길거리를 걸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집으로 돌아가면 늦게까지 공부하고 돌아온 줄로만 아는 아버지께서 “얼른 씻고 자라.”면서 동생 몰래 용돈을 주고 안방으로 가셨어요. 속으로 씹어 삼킨 말들이 많아요. ‘미안해요, 아버지.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 네 가지 문항 중에 하나를 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아버지,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문학 시간마다 선생님과 드라마이야기를 했어요. 명동백작이라는 근대 문인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였는데 아이들이 수능 때문에 자습을 하는 동안 김수영, 전혜린, 박인환을 이야기했어요. 그러다 가끔 선생님께 습작시를 보여드리면 “계속 쓰다보면 더 좋아질 거예요.”라고 응원해주셨어요. 선생님은 문창과에 지원해보라고 했지만 정작 입학하게 된 건 음향에 관련된 과였어요. 그래도 선생님은 저에게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시는 계속 쓸 거죠?”
대학은 지성의 요람이라고 불리기에 너무 허접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삶을 풍족하게 한다기보다 피폐하게 만들기 좋은 곳이었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더군요. 물론 저는 형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음악을 만드는데 열중했어요. 부모님은 걱정이셨죠. 소리를 다루는 게 공부라고 하니 노래를 듣는 것도 공연을 보는 것도 음악을 만드는 것도 뭐라고 할 수 없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참 죄송한 일이었어요.
시를 쓰고 노래를 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여겨요. 그래서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얼른 일을 마치려고 노력했어요. 빨리 일을 끝내고 시를 쓰거나 노래를 만들다보면 금세 퇴근시간이 다가왔죠. 문득 문득 돌아가신 문학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떠올랐어요. “그래도 시는 계속 쓸 거죠?” 그때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선생님은 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걸까요. 가슴에 못처럼 박혀서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는 걸 전 알고 있어요.
회사를 그만두던 날, 템플스테이를 갔어요. 어머니는 그만두더라도 말하고 그만두라고,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느냐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셨지만 견딜 수 없더라고요. 불행한 건 아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어요. 절에서 며칠을 지내다 깨달았어요. ‘여기 올 필요가 없었구나.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였는데.’, ‘이 좋은 곳에 고민이라는 쓰레기를 두고 가려고 했구나. 바보처럼.’ 그날부터 하루에 한 개의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꼭. 꼭.
글을 써서 먹고 살고 싶었어요. 요즘은 바라던 것처럼 살아요. 물론 쓰고 싶은 글만 쓰는 건 아니에요.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해요. 그리고 글을 쓰며 먹고 산다는 건 참으로 괴로운 일이라는 걸 느껴요. 저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프리랜서 작가의 경우에는 더 그렇죠. 큰 대우를 받는 건 과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글값이 똥값처럼 치부되는 건 참기 힘들어요. 글값은 내 목숨값인데 말이에요. 글값은 저의 목숨값인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