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이별 후에 다가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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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이별후에멋진하루를맞이할수있을것인가. 영화는 연애의 찬란한 순간만을 비추지 않는다. 극 내내 보이는 것이라고는 병운(하정우 분)의 지질해 보이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 희수(전도연 분)는 “돈을 못 갚았으면 실컷 욕이나 해주려고 그랬는데”라고 말한다. 병운의 조심스러운 말처럼 돈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일까.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꽤나 고달픈 일이다. 희수가 병운을 다시 만나 돈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보이듯이 서로의 습관부터 환경, 성격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기때문에, 서로를 너무 잘 알지만 아는 내색을 할수록 불편해지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헤어진 연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영화에서처럼 돈이 매개체가 될 경우에는 ‘지질해보이기 싫어서’와 ‘먹고 떨어지라’는 두 감정이 공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별 후에 항상 드는 생각은 ‘본전’이다. 그것은 단지 금전적인 부분만이 아닌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생겨나는데 ‘그는 과연 나를 사랑했을까’, ‘우리는 사랑이었을까’라는 헤어진 마당에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르는 부분들이 굴레를 만든다. 영화에서 희수와 병운의 만남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음에도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드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단위는 당사자에게 짧게도 길게도 느껴지는 모호한 영역이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병운은 결혼을 했고, 두 달 만에 이혼했다. 사업도 실패했고 집없이 떠돌아다니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희수는 결혼을 약속했던 이와 헤어졌고 직장은 그전에 이미 때려치운 백조. 1년이라는 순간이 만들어낸 현실은 1년 전보다 어찌 보면 더 비참해졌다. 시간이 더 흐르면 더욱 비참해질지도 모른다.

희수는 병운에게 돈을 받는 하루동안 병운이 처한 현실을 보게 된다. 자신보다 더 처참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모습들을 본다. 그 와중에도 병운은 특유의 넉살 때문인지 타인이 주는 상처에는 둔감한 듯 보인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꿈을 꾸고 있는 병운을 본다. 기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가 경마장을 어슬렁거리는 순간부터 스페인에서 외식사업을 하겠다는 허무맹랑한 꿈까지.

그의 현실이 다가올수록 병운이 무심히 내뱉는 자신과의 과거들도 따뜻하게 들린다. 차가웠던 것은 오히려 자신이 아니었을까. 고민을 하는 것인지 말문이 막힌 것인지 희수는 대답하지 못한다.

“네가 헤어지자고 한 후에 말이야. 네 마지막얼굴이 계속 안 잊히는 거야. 이상하더라고. 내가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때 네 표정이 무지 행복해 보였어. 나랑 있을 때 행복한 줄 알았는데 헤어질 때 더 행복한 표정이라니... 그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내가 조금 아팠지”

이별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이별의 순간은 가끔 잔인하고 진한 농도를 띤다는 것이 느껴진다. 헤어질 때 행복한 그 모습이 서로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병운은 습관을 기억하고 그녀를 위한다. “네가 이쪽 얼굴 좋아해서 나 왼쪽에만 있었는데”라거나 풀린 신발 끈을 묶어주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에게 애절함이나 비통함은 없다. 오히려 병운이 진지해지려 할수록 말을 끊는 것은 희수다. 영화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희수는 “이제 그만하자”며 돈 받기를 거절하고 끝내 헤어지는 순간에 병운은 마늘즙을 건넨다.

영화 내내 희수는 병운에게 진지해지지 않길 바란다. 희수는 그것을 바라고 병운을 만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과거를 통해서 무엇인가 느끼고 싶어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병운과 헤어지고 다시 병운을 찾아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병운은 아직도 꿈을 쫓는다. 마지막까지도 떠오르는 영화 속 병운의 대사는 적어도 병운에게는 멋진 하루였지 않았을까 의심하게 된다. “내가 쪼끔 단순한 건 사실인데,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걸?”

차를 타고 떠나는 희수는 그 모습들을 왼편으로 뒤로 한 채 슬며시 웃는다. 누구에게 멋진 하루였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