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수 감독님

우사단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재민이를 섭외하려고. 전에 일하던 마케팅 회사에서 마케팅 활용의 일환으로 인디작가들의 작품을 찾다가 재민이를 섭외하려는 생각으로 이태원에서 만났지.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니까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마을 모임에 나와보라고 그러기에 한 번 나가 본 것이 우사단과의 첫 만남이었던 것 같아.

그게 첫 만남이었고. 녹사평쪽에서 일을 하면서도 마을모임이 재미있으니까 이것 저것 하면서 참여하게 된 거지.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랑 같이 하고 있는 실장님. 동업자와 같이 어느 장소로 갈까 찾다가 우사단을 마을 모임 하면서 많이 왔었잖아. 이쪽이 괜찮을 것 같아서 실장님한테 “이쪽이 괜찮은 것 같다.”고 이야기 했을 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좋은 장소를 알아보자고 해서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 6개월 동안 마을모임을 하면서 매물을 봐 왔던 거지. 1층에 하려고 했는데 1층은 별로 없고 우리는 어차피 오피스니까. 1층이 굳이 필요없었고 3층 매물이 나와서 이쪽으로 오게 된 거고. 처음 시작은 그거야. 약간 차별화 된 마케팅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지역네트워크를 활용해보자. 지역에 작가들도 있고 디자이너들도 있으니까 인프라를 엮어서 활용을 하자는 거였고 궁극적인 목표는 자본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보자. 기업의 눈먼 돈들이 많잖아. 그런데 인디작가들은 돈이 없어서 힘들어 하는 작가들이 많아. 그런 자본을 끌어와서 인디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구조를 만들어 보자. 마케팅을 통해서. 그게 첫 목표였는데 그렇게는 안 되었어. (웃음)

2년 정도 된 시점에서 그런 갭이 있는 거야. 기업에서 원하는 마케팅의 방법과 우리가 작가들을 활용해서 하려는 마케팅의 방법이 입장 차이가 있어. 그 간극을 맞추기가 힘들지. 힘들어서 지금 상황은 지역의 인프라를 이용하지만 이걸 띄우겠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아.

마케팅이랑 잘 맞는 작가들과 콜라보 하면서 일하는 입장까지 오게 된 거야.

이전에는 개인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셨어요?

10년 정도 영화를 했었어. 영화에서 프로듀서를 했었지. 프로듀서는 감독이랑 달라. (웃음)

총괄 책임자 같은 건 가요.

응. 기획, 제작 쪽에 가까운.

2002년부터 내가 영화를 시작했어. 알만한 영화는 2004년에 주홍글씨. 약간… 독립장편이나 상업영화쪽에서 못 나오는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것 같아. 이름을 대면 독립영화쪽에서 잘 아는 감독들이 있어. 정지후 감독이나 조창우 감독. 그런 감독들과 작업해왔었고. 그게 한 10년 되었고. 10년 해보니까 영화해서 먹고 살기 힘든 거야. 영화를 때려 치우자. 2011년도에 영화를 때려 치우고 강원문화재단이라고 춘천에 있는 문화재단에서 영상지원팀에 있었어. 그래서 주로 강원도에 오는 영화촬영팀들 서포트 해주고 로케이션 데이터 베이스 만들고. 그런 것들을 반 년 정도 했던 것 같아. 그때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후 집행위원장님이 강원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와서 같이 일하게 되었었고. 그렇게 6개월 정도 춘천에서 일하는데 춘천이 되게 좋아. 그런데 심심해. (웃음) 그래서 지금 같이 회사를 창업한 실장님이 “거기서 뭐하냐. 마케팅 한 번 해보지 않겠냐.” 해서 마케팅을 하러 온 것이 2012년이었던 것 같아.

실장님은 나랑 안 지 20년? 25년 되었어. 꽤 오랫동안 알고 있는 사이였어. 그런 관계로 오게 되었고 그 다음에 플라이웍스라는 마케팅 회사에 있었어. 창업하기 전까지는. 1년 반에서 2년 정도 한 것 같아. 2013년 여름에 플아이웍스를 나와서 여기를 계약한 것이 9월 11일이야. 2013년 9월 11일. 그때부터 준비를 해서 창업은 10월 10일에 했고.

처음 이 동네에 오셨을 때 느낌은 어떠셨어요?

뭔가 태동하고 있는 느낌이었잖아. 작업실도 많이 생기고 애들도 서로 서로, ‘저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어’의 느낌이 있는. 흔히 이야기 되었던 것이 “홍대 초창기 분위기 같다.” 그런데 2년 정도 지난 지금은 홍대 초창기 느낌이 아니라 홍대 망해가는 느낌이야. 내가 가지고 있는 느낌들은. 그래서 지금 우리 마을활동들이 변하지 않으면 여기도 똑같아 지겠구나. 우리에게는 위기인 시기인 것 같아.

실제로 계단장에 오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어요. 셀러들 입장에서는 판매도 많이 저조해졌어요.

많이 줄었지.

마을에 와서는 처음 어떤 일을 하셨어요?

한 거 없어. 뭐 한 게 있냐.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었지. 애들이 마을모임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라는 퀘스천이 내 첫 번째 목적이었던 것 같고. 꾸준히 마을모임에 나왔던 멤버 중 다섯 손가락에는 들어갈 껄? 단이나 연석이, 재민이, 지선이, 그리고 나. 초창기에는 금식이도 있었고 우성이. 그런 친구들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 특별히 내가 한 일은 없는 것 같아. 나는 뭐, 마을에 찍사. 그 정도 느낌. (웃음)

계단장 할 때마다 나오셔서 사진을 찍으시잖아요.

거의 찍고 bnp가 온라인 마케팅을 하니까. 우사단마을 페이스북 관리를 누가 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우리끼리 있었어. 그래서 초창기에는 콘텐츠도 올리고 관리도 하고. 지금도 같이 하고 있지. 단이나 재민이하고 나까지 세 명이서 같이 하고 있거든. 주로 페북 운영에 대한 자문이나 실질적인 운영은 조금 해주었고 지금도 그런 것들을 하고 있지.

초창기에 계단장을 할 때와 지금 어떻게 다르게 느끼세요?